산업

트럼프 EV 후퇴에 흔들리는 배터리 투자…'EV 캐즘' 속 K배터리 북미 전략 변수

정보운 기자 2026-03-09 16:15:35
SK온 美 공장 구조조정… EV 수요 둔화 영향 포드·GM 전기차 투자 속도 조절…배터리 수요도 영향 IRA 이후 확대된 북미 투자…정책 변수에 불확실성
SK온의 미국 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 모습이다. [사진=SK온]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EV) 지원 축소 정책과 완성차 업체들의 EV 투자 속도 조절이 맞물리며 국내 배터리 업계가 추진해온 미국 현지 투자 전략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업계에서는 이른바 'EV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최근 미국 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와 완성차 업체들의 전략 수정이 겹치면서 EV 시장 둔화가 단순한 수요 사이클이 아니라 정책 변수와 맞물린 구조적 변화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SK On의 미국 법인 SK Battery America는 조지아주 커머스 공장에서 근무하는 직원 약 2566명 가운데 37%인 968명을 정리해고했다. 해당 공장은 Ford Motor Company, Hyundai Motor Company, Volkswagen 등 완성차 업체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시설이다.

회사 측은 이메일 성명을 통해 "시장 상황에 맞춰 영업 활동을 조정하기 위해 인력 감축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며 "조지아주에 대한 투자 약속과 첨단 배터리 제조를 위한 미국 공급망 구축에는 변함없이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구조조정은 미국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축소와 내연기관차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EV 전환 속도에 제동이 걸렸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신규 전기차 구매 시 제공되던 최대 7500달러의 연방 세액공제를 폐지했다. 이어 자동차 제조사가 준수해야 하는 연비 기준인 기업평균연비제(CAFE)를 완화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기존 갤런당 50마일 수준이던 기준을 34.5마일로 낮춰 친환경 차량 중심의 규제를 완화하고 내연기관차 생산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정책 변화와 함께 완성차 업체들의 EV 투자 전략도 조정되는 모습이다. Ford Motor Company는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 생산 계획을 최근 취소했고 EV 투자 속도를 낮추고 하이브리드 차량과 내연기관차 생산에 무게를 두고 있다. General Motors 역시 대규모 손실을 감수하며 전기차 사업 규모를 축소하는 등 EV 전략을 재조정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의 전략 변화는 배터리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기차 생산 계획이 조정되면 배터리 주문량 역시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EV 수요 둔화가 단순한 시장 사이클이라기보다 정책과 산업 전략 변화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미국 전기차 산업 육성과 배터리 공급망 재편을 겨냥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 이후 북미 생산 확대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왔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은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와 배터리에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핵심 광물과 배터리 부품의 역내 조달 비중을 요구하는 정책으로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의 현지 투자 확대를 촉발했다.

이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완성차 업체들과 합작 공장을 설립하거나 현지 생산 설비를 확대하며 북미 생산 거점을 빠르게 늘려왔다. 다만 최근 전기차 수요 둔화와 정책 방향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 같은 북미 투자 전략에도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최근 전기차 수요 둔화와 정책 변화로 단기적인 조정 국면이 나타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전기차 전환 흐름 자체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미국을 중심으로 전기차 지원 정책과 완성차 업체들의 투자 전략이 달라질 경우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과 투자 속도에도 일정 부분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SK온 관계자는 "최근 시장 환경 변화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고 실행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 차원에서 인력 운영을 조정했다"며 "앞으로도 시장 수요에 맞춰 탄력적으로 인력을 운영하고 효율을 높여 수익성 중심의 사업 구조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