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밝힌 ‘에너지 지배력(Energy Dominance) 강화’ 선언은 세계 경제 질서를 뒤흔들 변곡점으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을 넘어 에너지 패권 국가가 될 것”이라며 알래스카·연방 공유지 시추 확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승인 절차 간소화, 환경 규제 완화를 밝혔다.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의 부활을 공식화한 것이다.
그는 “동맹국들이 더 저렴하고 안정적인 미국산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도 “불공정한 무역 구조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공급 확대를 외교·통상 협상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발언이다.
이 같은 변화는 중동발 군사 충돌로 에너지 안보 위기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의 증산과 수출 확대는 국제 유가와 가스 가격 안정으로 이어지고 이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에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제조업 채산성 개선과 물가 안정, 금리 인하 기대로 이어지는 흐름도 가능하다.
문제는 그 이면의 노골적인 ‘미국 우선주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일자리와 산업을 되찾겠다”며 리쇼어링을 재차 강조했다. 동맹국을 향한 사실상의 ‘에너지 구매 압박’도 시사했다. 이는 향후 미국 무역대표부(USTR)를 중심으로 한국의 비관세 장벽과 무역 흑자 구조에 대한 공세가 강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결국 우리는 ‘싼 에너지’라는 당근과 ‘통상 압박’이라는 채찍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미국산 LNG 수입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그 대가로 무엇을 내어줄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가격 경쟁력만을 이유로 정책을 재편할 경우 중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과 외교적 자율성이 훼손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대응은 단기 처방이 아닌 구조적 해법이어야 한다. 원전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한편 글로벌 시장 주도권 확보에 나서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AI 데이터센터 시대에는 안정적 전력이 핵심”이라며 소형모듈원전(SMR) 투자를 강조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동시에 화석연료 중심 회귀라는 단기 흐름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탄소 중립은 되돌릴 수 없는 방향이다. 오히려 저유가 가능성이 열리는 지금이 재생에너지와 수소경제 전환을 가속할 시점이다.
국내적으로는 에너지 비용 하락의 파급 효과를 면밀히 관리해야 한다. 물가 안정은 긍정적이지만 과도한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 쏠릴 경우 또 다른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가계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정책 신호의 일관성과 시장 관리 역량이 중요하다.
결국 관건은 전략과 신뢰다. 외부 변수는 통제할 수 없지만 활용 방식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단기 이익이 아닌 장기 국익을 중심에 둔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
트럼프의 ‘에너지 지배력’ 선언은 위기이자 기회다. 이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한국 경제는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낙관은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지금이야말로 향후 10년의 국운을 가를 분수령이다.
Copyright © 경제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