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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중동의 전운 속 한국의 선택—평화와 인권, 그 보편적 가치의 책임

2026-04-18 14:03:00
이재명 대통령이 2일 오후 중동 사태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 뒤 국회를 나서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경제일보] 중동 전쟁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평화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강조한 것은 일부에서 찬반 논란을 낳고 있다. 외교는 현실이며 국익이 최우선이라는 점에서 원칙적 발언이 자칫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위치와 역할을 냉정하게 돌아본다면 이러한 우려는 오히려 좁은 시야에 머무는 해석일 수 있다.

오늘의 한국은 더 이상 과거의 변방 국가가 아니다. 경제 규모와 산업 경쟁력 그리고 문화적 영향력에서 세계 상위권을 지향하는 국가로 올라섰다. 반도체와 방산, 조선과 배터리 등 전략 산업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한편 K-드라마와 영화, K-팝과 음식으로 대표되는 K-컬처는 전 세계 MZ 세대의 감수성과 취향을 움직이고 있다. 이른바 ‘K-시리즈’는 이제 하나의 산업을 넘어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형성하는 핵심 자산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이 있다. 기술과 문화만으로는 국가의 위상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계는 더 이상 상품과 콘텐츠만으로 국가를 평가하지 않는다. 그 나라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어떤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전달하는지에 주목한다. 문화적 매력과 기술적 경쟁력 위에 보편적 가치가 더해질 때 비로소 ‘존중받는 국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중동 사태를 둘러싼 한국의 입장은 단순한 외교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다. 전쟁과 갈등의 한복판에서 평화와 인권을 말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국가로서의 태도를 보여주는 일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에서 가치의 언어를 포기하는 순간 국가는 방향을 잃게 된다.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도 이러한 가치를 외면해 온 민족이 아니다. 단군 이래 이어져 온 홍익인간의 정신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보편적 이상을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신화적 선언이 아니라 공동체를 넘어 인류 전체를 향한 가치 지향이다. 오늘날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평화와 인권 그리고 공존의 원칙으로 이어진다.

지금 한국이 서 있는 자리는 바로 이 전통을 세계 속에서 실천해야 할 위치다. 세계 5위권 국가를 지향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 규모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제사회에서의 책임과 역할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만 편승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더 이상 한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다.

물론 외교는 이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익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며 발언과 행동은 현실적 파장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원칙 없는 실리는 오래가지 못한다. 오히려 분명한 가치 위에 서 있을 때 외교는 더 큰 설득력을 갖는다.

중동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와 민족, 에너지와 지정학이 얽힌 복합적 충돌이며 그 여파는 세계 경제와 안보 질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평화와 인권을 강조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에 가깝다.

K-콘텐츠가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한국 산업이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는 지금 한국은 더 이상 침묵하는 국가로 남을 수 없다. 문화와 기술의 영향력에 걸맞은 가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자리 잡는 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그런 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요구에 대한 응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제 세계를 향해 무엇을 만들 것인가뿐만 아니라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평화와 인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국가로 남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