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국내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의 첫 사례인 '대산 1호 프로젝트'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다. 다만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과 에틸렌 비닐아세테이트(EVA) 시장의 과점 우려로 향후 5년간 가격과 공급에 제한이 붙으면서 '공급과잉 해소'와 '시장 경쟁 유지'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과제도 떠올랐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전날 롯데케미칼·롯데대산석화·HD현대오일뱅크·HD현대케미칼이 추진한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다. HD현대케미칼이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을 물적분할해 세운 롯데대산석화를 흡수합병하고,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통합 HD현대케미칼 지분을 각각 50%씩 보유하는 구조다.
이번 승인으로 대산 사업재편에도 속도가 붙게 됐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6월 대산공장을 분할했으며 HD현대케미칼과의 합병을 오는 9월까지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양사는 통합법인에 각각 6000억원을 출자하고 원료 수급부터 제품 생산까지 수직계열화를 강화해 운영 효율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다만 공정위는 구조조정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합병 이후 LDPE·EVA 시장의 경쟁이 약화할 가능성을 문제 삼았다. 양사가 합쳐지면 해당 시장의 주요 사업자가 한화·LG·롯데·HD현대 4개에서 한화·LG·HD현대 3개로 줄어든다.
공정위는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해온 HD현대케미칼이 롯데케미칼과 합쳐지면 시장의 가격 경쟁 압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통합법인이 수익성이 낮은 제품의 생산을 줄일 경우 중소 플라스틱 가공업체들이 대체 공급처를 찾기 어려워 가격 상승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공정위는 향후 5년간 LDPE·EVA의 국내 판매가격 변동률을 수출가격 변동률과 연동하도록 했다.
수출가격이 오르면 국내가격 인상률은 그 이하로 제한하고, 수출가격이 내려가면 국내가격도 최소 같은 수준으로 내려야 한다. 기존에 생산하던 제품은 국내 수요자가 요청할 경우 계속 공급해야 한다. 가격·수량·원가·재고량 등 경쟁 민감정보의 공유와 양사 임직원 겸임도 제한된다.
이번 결정은 후속 석유화학 구조조정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정위는 롯데케미칼·여천NCC·한화솔루션·DL케미칼이 참여하는 '여수 1호 프로젝트'의 기업결합도 심사하고 있다. 여수에서는 여천NCC 2·3공장을 멈추고 1공장과 롯데케미칼 여수공장을 통합해 에틸렌 생산능력 약 140만톤을 줄이는 사업재편이 추진되고 있다. 대산의 110만톤을 더하면 두 지역에서 약 250만톤의 생산능력이 줄어들게 된다.
업계에서는 향후 구조조정이 확대될수록 설비 감축에 따른 효율 개선과 함께 시장 과점 문제가 반복적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사업자를 통합할수록 경쟁 사업자 역시 줄어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결정에 대해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을 뒷받침하면서 실효성 있는 시정조치를 통해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국내 수요자의 피해를 예방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했다.
대산 1호에서 마련된 '구조조정은 허용하되 가격 경쟁은 보호한다'는 원칙이 여수 등 후속 사업재편에도 적용될지가 향후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주요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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