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데스크 칼럼] 공급 외친 정부, 정작 서울 재건축은 묶어뒀다

한석진 기자 2026-08-25 09:14:39
[사진=유나현 기자]


[경제일보] 이재명 정부는 지난 13일 수도권에 23만호 이상을 추가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름도 ‘주택 신속공급 방안’이다. 공급이 부족하니 더 많이, 더 빨리 짓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실제 주택을 늘릴 수 있는 재건축·재개발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정반대다.
 

서울시는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을 3년간 한시적으로 풀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규제를 풀 경우 재건축 기대감이 커져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다. 집값을 잡겠다고 정비사업에 묶인 주택의 거래까지 계속 막겠다는 것이다.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은 투기과열지구에서 재건축은 조합설립인가 이후, 재개발은 관리처분인가 이후 새로 집을 산 사람이 원칙적으로 조합원 자격을 승계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만든 규제다. 문제는 투기만 막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거래와 사업의 자금 흐름까지 함께 묶는다는 데 있다.
 

지난해 10·15 대책 이후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을 받는 정비사업장은 42곳에서 159곳으로 늘었다. 강남 3구와 용산구를 겨냥하던 규제가 서울 전역으로 번진 것이다. 사업성과 가격 수준이 전혀 다른 지역까지 똑같은 잣대가 적용됐다.
 

그 부담은 투기세력에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서울시가 새로 규제를 받게 된 117개 구역을 조사한 결과 분담금 부담과 주거 이전, 상속 문제 등으로 집을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한다는 사례가 127건 확인됐다. 절반가량은 분담금 부담 때문이었다.
 

재건축 공사비가 뛰고 추가 분담금이 억 단위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끝까지 사업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조합원도 있다. 이들에게 집을 팔고 빠져나갈 길까지 막아 놓으면 사업이 빨라지는 것이 아니다.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조합원이 늘고 조합 내부 갈등이 커지면 사업은 그만큼 늦어진다.
 

투기를 막겠다며 공급사업의 자금 순환까지 막는 것은 정책의 목적과 수단이 뒤집힌 것이다.

 

정부 정책의 모순은 다른 대책과 비교하면 더 선명해진다. 정부는 이번 공급대책에서 재개발 조합설립 동의율을 75%에서 70%로 낮추고 시공사 선정 절차와 이주비 관련 규제도 손질하기로 했다. 정비사업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그 시간을 줄여야 공급이 빨라진다는 사실을 정부도 인정한 셈이다.
 

한쪽에서는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겠다며 규제를 풀고, 다른 한쪽에서는 집값이 오를 수 있다며 사업의 출구를 막아 놓는다. 정책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서울의 주택 공급 구조를 보면 더 그렇다. 서울에는 대규모 신도시를 만들 빈 땅이 거의 없다. 정부가 공공청사와 유휴부지, 그린벨트와 각종 공공부지까지 들여다보는 이유도 새로 집을 지을 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재건축·재개발은 다르다. 사업할 땅이 이미 있고 소유자도 있다. 도로와 지하철, 학교 같은 기반시설도 상당 부분 갖춰져 있다. 구역 지정과 조합 설립, 사업시행인가까지 수년간 진행해 온 사업장도 적지 않다. 서울에서 주택을 늘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다.
 

서울시는 2031년까지 정비사업을 통해 31만호를 착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가운데 3년 안에 착공할 수 있는 85개 구역 8만5000호를 따로 골라 사업 속도를 높이겠다고 했다. 없는 땅을 새로 찾는 것보다 이미 움직이고 있는 사업의 시간을 줄이는 편이 훨씬 빠르다.
 

그런데 정부는 이 사업들의 거래 규제를 그대로 두고 또 다른 공급부지를 찾는다. 공급정책의 순서가 뒤집혔다.
 

재건축 규제 완화가 강남과 한강변 일부 인기 단지의 가격을 자극할 가능성은 있다. 그렇다고 서울 25개 구의 정비사업을 한꺼번에 묶어둘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압구정과 강북의 사업성 낮은 정비구역을 같은 규제로 다루는 것은 정밀한 정책이 아니라 행정 편의다.
 

가격이 과열되는 지역은 대출과 세제, 토지거래허가제, 자금출처 조사로 관리하면 된다. 사업 단계와 보유 기간, 지역별 가격 수준에 따라 조합원 지위 양도 요건을 세분화하는 방법도 있다. 투기 대응 수단은 따로 있는데 공급사업의 출구까지 잠글 이유는 없다.
 

서울시가 요구한 것도 영구적인 전면 자유화가 아니다. 3년간 한시적으로 규제를 완화하자는 것이다. 전면 완화가 어렵다면 실거주 장기보유자나 과도한 분담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조합원부터 예외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선택지는 있는데 정부는 가장 손쉬운 현상 유지에 머물러 있다.
 

이재명 정부는 지금 공급을 서두른다고 한다. 수도권에 23만호 이상을 추가 공급하고 공공부지를 발굴하며 각종 절차를 앞당기겠다고 한다. 공급 부족이 집값과 전셋값을 밀어 올리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먼저 움직여야 할 곳도 분명하다. 정부가 돈을 들여 새 사업을 만드는 것보다 민간이 자기 돈을 들여 짓겠다는 주택의 장애물을 걷어내는 것이 빠르다. 이미 수년간 행정 절차를 밟아 온 사업부터 착공시키는 것이 공급정책의 기본 순서다.
 

재건축·재개발은 오늘 규제를 푼다고 내년에 바로 입주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서울시는 정비사업 기간을 평균 18.5년에서 12년까지 줄이겠다고 한다. 아무리 서둘러도 10년 안팎이 걸린다. 지금 늦춘 1년은 몇 년 뒤 입주물량에서 그대로 빠진다.
 

과거 정부들이 부동산 정책에서 반복해 온 잘못도 비슷했다. 집값이 오르면 규제를 늘리고, 규제로 사업이 늦어져 공급이 부족해지면 다시 공급대책을 내놨다. 당장의 가격만 잡으려다 몇 년 뒤 공급 부족을 키우는 악순환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공급을 말하기 시작했다면 정책도 공급에 맞춰야 한다. 집값 과열이 두렵다고 서울의 정비사업을 묶어 놓고 다른 곳에서 23만호, 30만호를 외친다고 주택이 빨리 생기지는 않는다.
 

가격은 가격대로 관리하고 공급은 공급대로 움직여야 한다. 둘을 한꺼번에 묶어 놓으면 집값도 잡지 못하고 공급 시계만 늦어진다.
 

공급을 늘리겠다는 정부가 먼저 풀어야 할 것은 새 택지가 아니다. 자신이 채워 놓은 규제의 자물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