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제시된 농협의 지배구조 개혁안이 과연 개혁이라 부를 만한 내용인지다. 겉으로는 제도 개선과 내부 통제 강화를 강조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근본적인 문제를 비껴간 채 외형만 손보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존 구조는 그대로 둔 채 개혁이라는 이름만 붙인 ‘개혁 흉내’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표적인 사례가 준법감시인 제도다. 준법감시인은 조직 내부의 부패와 위법 행위를 감시하는 핵심 장치다.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이 직책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시 기능이 독립성을 잃으면 조직 내부 권력은 견제 장치를 잃고 쉽게 부패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농협에서 비리가 반복된 배경에도 이 준법감시 기능의 약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내부 직원이 감시 역할을 맡는 구조에서는 경영진과 조직 문화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조직에서 근무해 온 선후배 관계 속에서 강력한 감시 기능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개혁의 핵심은 감시 기능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개혁안은 중앙회 차원에서만 외부 전문가 임명을 의무화하고 전국 지역 농협에 대해서는 내부 직원 선임을 계속 허용했다. 이유는 인건비 부담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수십억 원대 횡령 사건이 반복되고 조직 전체의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감시 인력 한 명의 비용을 이유로 기존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감시 체계의 근본적 변화 대신 문제를 미루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 큰 논란은 농협 경영진의 태도다. 비리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조직을 책임지는 인물이 스스로 개혁의 주체라고 나서는 모습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수사 대상에 포함된 인물이 조직 개혁을 주도하겠다고 하는 상황은 국민과 농민에게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조직 개혁의 출발점은 신뢰다. 그러나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개혁을 이야기한다면 그 정당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개혁의 대상과 개혁의 주체가 뒤섞이면 어떤 제도적 변화도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농협은 일반 기업과 다른 협동조합 조직이다. 농민들이 스스로의 경제적 권익을 지키기 위해 만든 자조 조직이라는 점에서 공공적 성격이 강하다. 그만큼 투명성과 책임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농협은 협동조합 정신보다는 거대한 조직을 유지하는 관료적 구조에 가까워졌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조직이 커질수록 권력은 집중된다. 그 권력을 견제할 장치가 약해지면 부패의 가능성도 커진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일부 제도만 손보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진정한 개혁은 제도의 문구가 아니라 구조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준법감시 기능을 외부 전문가에게 완전히 개방하고 감시 조직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동시에 비리 의혹이 제기된 경영진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책임을 묻지 않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라 관리에 불과하다.
농협이 다시 농민의 조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부 문제를 외부의 시선으로 점검하고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개혁 논의 역시 또 하나의 미완의 시도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농협이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형식적인 개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감시 체계를 확립하고 책임 있는 경영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농협이 진정으로 농민을 위한 조직이라는 본래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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