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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사설] 미·중 '불편한 동거'에서 '건설적 안정'으로...세계 질서를 다시 설계하려는 135분

경제일보 2026-05-14 17:53:27
14일 목요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경제일보]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전 세계의 시선은 135분 동안 이어진 두 정상의 대화에 집중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이란 전쟁 이후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미국과 중국이 선택한 새로운 생존 전략의 선언에 가까웠다.

이번 회담은 여러 측면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9년 만의 방중이라는 상징성 자체가 크다. 미·중 관계는 지난 수년간 무역전쟁과 기술 패권 경쟁, 대만 문제와 공급망 갈등으로 사실상 ‘신냉전’ 상태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양국이 충돌의 위험성을 현실적으로 인식하고 ‘관리 가능한 경쟁’이라는 새로운 질서 구축에 나섰음을 보여준다.

특히 회담 시점이 예사롭지 않다. 미·이란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전면 대결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중국 역시 부동산 침체와 내수 둔화, 수출 감소라는 현실적 압박 속에서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무한정 끌고 갈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양국은 ‘대결의 확대’보다 ‘갈등의 관리’가 서로에게 더 현실적이라는 판단에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넘어선 전략적 공존 모색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양국이 관계의 새로운 방향성을 ‘건설적·전략적 안정’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시진핑 주석은 회담에서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언급한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의 충돌’을 직접 거론했다. 미국과 중국이 역사적 함정에 빠져 전쟁으로 치닫는 길을 피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군사·금융 패권국이지만 중국은 이미 제조업과 공급망, 일부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역사적으로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이 충돌 없이 공존한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미·중 갈등을 두고 “21세기판 냉전”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양국은 최소한 공개적으로는 ‘충돌 관리’와 ‘충돌 회피’에 방점을 찍었다. 시 주석은 양국이 “적수가 아닌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시 주석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평가하며 우호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는 미국 내부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미·이란 전쟁 이후 미국 경제는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갈등을 완화해 경제 불안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결국 이번 회담은 미국이 중국 압박 일변도 전략에서 일정 부분 현실론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양국이 “2026년을 미·중 관계의 새로운 역사적 이정표의 해로 만들자”고 합의한 대목이다. 이는 단순한 일회성 정상회담이 아니라 향후 수년간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장기 전략 구상을 공유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 대만이라는 화약고 그리고 중동 문제의 숨은 거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양국의 핵심 이해관계 충돌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대만 문제다.

시진핑 주석은 회담에서 “대만 독립과 평화는 양립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는 미국이 대만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경우 중국 역시 강경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사실상의 경고다. 중국은 대만 문제를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국가 통일’과 ‘체제 정당성’의 문제로 간주한다. 따라서 미국의 무기 판매나 군사 지원은 중국 입장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이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 무기 판매 문제를 시 주석과 논의하겠다고 밝힌 부분이다. 이는 미국이 기존 강경 노선에서 일정 부분 전략적 유연성을 검토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물론 미국이 대만을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중동 전쟁과 경제 불안 속에서 중국과의 관계 안정을 우선시할 경우 대만 문제의 긴장 수위를 조절할 여지는 충분하다.

실제 이번 회담에서는 중동 문제 역시 핵심 의제였을 가능성이 크다. 공식 발표에서는 구체적 내용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신화통신은 양국 정상이 중동 정세와 우크라이나 전쟁, 한반도 문제를 논의했다고 전했다.

특히 미국 입장에서 중국의 협조는 절실하다. 중국은 이란과 긴밀한 경제·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중동 에너지 질서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국이 이란 문제를 조기에 봉합하려면 중국의 중재와 협력이 필요하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은 단순한 미·중 양자 관계를 넘어 중동과 유럽, 동아시아를 포함한 글로벌 안보 질서 재편의 성격을 띠고 있다.

◆ “디커플링은 어렵다”…현실의 재확인

이번 회담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미국의 대표 기술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배석한 점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팀 쿡 애플 CEO는 단순한 기업인이 아니다. 이들은 미국 첨단 산업과 글로벌 공급망의 상징적 인물들이다.

이들의 참석은 미국과 중국 경제가 여전히 깊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중국 시장과 공급망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 애플은 여전히 중국 생산기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엔비디아 역시 중국 시장 없이 글로벌 AI 반도체 전략을 완성하기 어렵다. 테슬라 역시 중국은 최대 생산기지이자 핵심 소비시장이다.

결국 미국이 외교·안보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완전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사실상 어렵다는 현실을 이번 회담이 재확인시켜준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직접 소개하며 “중국을 존중한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중국 때리기’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는 미국 경제가 중국과의 안정적 관계 없이는 성장과 물가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을 반영한다.

중국 역시 미국 자본과 첨단 기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중국의 개방의 문은 더 크게 열릴 것”이라고 강조한 것은 외국 자본 이탈 우려를 차단하고 미국 기업들의 지속적인 투자를 유도하려는 계산이 담겨 있다.

결국 양국은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도 경제적 실리를 위해 일정 수준의 협력을 유지하는 ‘복합 경쟁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

◆ 패권 경쟁에서 ‘관리된 공존’ 시대로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국제 질서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냉전 시대처럼 완전한 적대와 봉쇄가 아니라 경쟁하면서도 충돌을 피하는 ‘관리된 공존’ 체제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제사회에도 중요한 안정 신호를 보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될 경우 세계 경제는 공급망 붕괴와 금융 불안, 에너지 위기라는 삼중 충격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나 양국이 최소한 전략적 소통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면서 국제 금융시장과 원자재 시장은 안도감을 보이고 있다.

다만 근본적 갈등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대만 문제는 여전히 가장 위험한 화약고이며 첨단 기술 패권 경쟁 역시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AI 반도체와 양자기술, 우주산업, 에너지 공급망을 둘러싼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럼에도 이번 회담의 의미는 분명하다. 미국과 중국 모두 ‘공멸’의 위험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도덕경』은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은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지금 세계가 원하는 것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패권국이 아니라 갈등을 통제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지도력이다.

135분의 대화가 세계사를 완전히 바꿀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이번 회담은 전쟁과 충돌의 시대 속에서도 대화와 협상이 여전히 국제 질서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미·중은 여전히 경쟁자다. 그러나 이번 베이징 회담은 두 강대국이 처음으로 ‘파국 없는 경쟁’이라는 새로운 국제정치의 문법을 시험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이제 세계는 양국이 약속한 ‘건설적 안정’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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