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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경제

"밀가루값 6년 담합"…공정위, 제분사 7곳에 6710억 '철퇴'

안서희 기자 2026-05-20 16:30:38

가격 인상·인하 시기까지 합의…총 24차례 공조

보조금 받으면서 담합까지…제분업계 구조적 문제 드러나

서울 시내 대형 마트에 진열된 밀가루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밀가루 시장을 사실상 좌우해온 제분업체들의 장기 담합을 적발해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가격과 물량을 동시에 통제해온 구조적 담합이 확인되면서 민생과 직결된 식품 원재료 시장의 왜곡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삼양사·대선제분·삼화제분·한탑 등 7개 제분사의 담합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는 공정위 담합 사건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조사 결과 이들 업체는 2019년 11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약 6년간 제면·제과·제빵업체 등에 공급하는 B2B용 밀가루 가격과 물량을 사전에 합의하고 이를 실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7개사는 2024년 기준 국내 B2B 밀가루 시장 점유율 87.7%를 차지하는 과점 사업자다. 특히 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 등 상위 3개사의 점유율만 62%에 달해 시장 지배력이 집중된 구조였다.

담합은 경쟁 격화에서 출발했다. 2018년 대한제분이 주요 수요처인 농심에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해 물량을 대거 확보하자 업체 간 가격 경쟁이 심화됐다. 이후 2019년 말 상위 업체 임원들이 모여 ‘과도한 경쟁 자제’와 ‘적정 가격 유지’에 합의하면서 본격적인 공조가 시작됐다.

초기에는 농심·팔도 등 대형 수요처를 중심으로 가격과 공급량을 조정했으나 2020년 들어 중소 거래처와 대리점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2021년 4월 이후에는 7개사 전체가 모든 거래처를 대상으로 전 품목 가격을 공동으로 결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공정위는 이들이 총 24차례 가격 인상·인하 시기와 폭, 공급 물량과 순위를 합의했으며 대표자 및 실무자 회합도 55회에 달했다.

특히 원가 변동을 이용한 ‘이중 전략’이 눈에 띈다. 국제 원맥 가격이 상승하던 2020~2022년에는 가격 인상 시기와 폭을 맞춰 신속히 반영했고 반대로 2023년 이후 원맥 가격이 하락하자 가격 인하를 늦추는 방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했다. 공정위는 이를 전형적인 담합 이익 극대화 전략으로 판단했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471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한 기간에도 담합은 지속됐다. 보조금은 가격 동결 또는 제한적 인상 시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였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이 차단되며 정책 효과가 반감됐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밀가루 가격은 크게 올랐다. 2022년 9월 기준 주요 품목인 중력분 가격은 2019년 말 대비 최소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했다. 소비자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체별 과징금은 사조동아원이 1830억97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대한제분(1792억7300만원), CJ제일제당(1317억100만원), 삼양사(947억8700만원) 등이 뒤를 이었다. 공정위는 관련 매출액 5조6900억원을 기준으로 최대 15%의 부과 기준율을 적용했으며 조사 협조 여부에 따라 일부 감경을 반영했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와 함께 가격 재결정 명령도 내렸다. 각 업체는 담합 이전 수준의 경쟁 질서를 회복할 수 있도록 3개월 내 가격을 독자적으로 다시 설정하고 이를 보고해야 한다. 향후 3년간 가격 변경 내역도 정기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제분업계의 구조적 담합 가능성을 다시 드러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해당 업체들은 2006년에도 유사한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 반복되는 담합에 대해 보다 강력한 감시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민생과 직결된 품목일수록 담합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가격 재결정 명령을 적극 활용해 시장 경쟁을 회복하고 유사 사례에 대해서도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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