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유가 급등으로 단기 물류 부담은 커졌지만 산유국 재정 확대에 따른 인프라 발주 증가 가능성이 새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이란 본토 공습 이후 중동 지역 지정학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단순한 악재로만 볼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 산유국의 재정 여력이 확대되고 이는 대형 인프라와 플랜트 발주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3일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견기업의 중동 수출은 전년 대비 19.6% 증가한 37억6900만달러를 기록했다. 중소기업의 중동 수출도 14.1% 늘어난 64억5000만달러로 집계됐다. 미국 관세 정책 강화와 중국 경기 둔화로 수출 환경이 위축되자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시장을 다변화한 결과다.
중동은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의 핵심 거점이자 플랜트와 인프라 수주의 주요 시장이다. 최근에는 스마트팜 자동차 부품 산업 기자재 기업들이 현지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공급망에 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순 수출을 넘어 현지화 전략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흐름이다.
단기적으로는 물류와 보험료 상승 부담이 불가피하다.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77달러를 넘어섰고 원달러 환율도 1460원대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해상 운임과 전쟁 보험료 인상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무역협회는 해협 폐쇄 시 우회 항로 이용에 따른 추가 비용이 기존 운임 대비 최대 50~80% 수준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고유가는 산유국의 재정 여력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전 2030’과 같은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는 유가와 재정 상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유가 상승이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될 경우 도로 항만 산업단지 신재생에너지 설비 등 대형 프로젝트의 집행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중동에 프로젝트형 수출을 하는 한 엔지니어링업체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운임과 환율 부담이 크지만 산유국 재정이 확대되면 신규 발주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이미 현지 파트너와 합작 기반을 마련한 기업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견기업은 수개월치 원자재를 확보해 단기 충격을 일부 완충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특히 현지 생산이나 조달 비중을 늘린 기업은 해상 물류 의존도를 줄일 수 있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다. 중소기업은 환헤지와 운임 협상력에서 제약이 있지만 현지 기업과의 협력 강화나 공동 물류를 통해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무역대금 결제 환경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변수다. 지정학적 긴장으로 결제 지연이 발생할 경우 자금 유동성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이에 국내 금융권은 필요 시 대출 만기 연장과 운전자금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한국 중소·중견기업의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가르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단기 물류 부담과 환율 변동성은 피하기 어렵지만 고유가에 따른 중동 재정 확대가 현실화할 경우 발주 기회를 선점한 기업이 중장기 수혜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는 국면에서 현지화 전략과 재무 안정성을 갖춘 기업의 대응이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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