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중동에서 다시 전쟁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세계 경제는 또다시 지정학 리스크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전쟁은 군사 충돌로 시작되지만 그 여파는 곧바로 에너지 시장과 금융 시장 그리고 각국 경제 전반으로 번진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한국 경제에 중동의 불안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지정학 리스크는 특정 지역의 분쟁이 공급망과 금융 시장을 통해 세계 경제 전체로 확산되는 구조적 위험을 의미한다. 특히 중동은 세계 에너지 공급의 핵심 축이다. 페르시아만을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해상 원유 수송의 상당 부분이 지나가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 해협의 긴장만으로도 국제 유가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국 경제는 이런 충격에 특히 취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국내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고 에너지 수입 의존도 역시 높다. 중동의 군사적 긴장은 곧바로 유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산업 생산 비용과 물가 상승 압력으로 직결된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서 에너지 가격 상승은 기업 경쟁력과 소비 여력을 동시에 압박할 수밖에 없다.
전쟁의 충격은 에너지 시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해상 운송과 물류 체계가 흔들리면 원자재 가격과 운송비가 함께 뛰어오른다. 반도체와 자동차, 석유화학 등 제조업 중심의 수출 구조를 가진 한국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 민감하다. 생산 비용 상승은 곧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면 국제 자금은 안전 자산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뚜렷해진다. 이 과정에서 신흥국 시장은 자금 유출과 환율 상승, 주식 시장 변동성 확대라는 삼중 압력을 받기 쉽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처럼 전쟁이 가져오는 경제 충격은 하나의 연결된 고리처럼 작동한다. 유가 상승은 에너지 수입 비용을 높이고 이는 무역수지 악화로 이어진다. 무역수지 악화는 원화 약세를 부르고 환율 상승은 다시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운다. 소비와 투자 심리가 동시에 위축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지정학 리스크는 위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제 안보 환경이 불안정해질수록 방위 산업과 에너지 산업 등 전략 산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한국 방산 기업들은 글로벌 군비 지출 확대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 있다. LNG 운반선 등 에너지 운송 선박 수요 역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질수록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전환 산업의 전략적 가치도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관건은 국가 전략이다. 지정학 리스크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준비된 국가는 위기를 관리하고 기회를 만들어 낸다. 에너지 수입 구조를 다변화하고 공급망의 회복력을 높이며 전략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이 그 출발점이다.
세계 경제는 다시 ‘지정학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전쟁은 먼 곳에서 시작되지만 그 충격은 국경을 넘어 우리의 경제와 일상에 스며든다. 지정학 리스크를 읽고 대비하는 능력 자체가 이제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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