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영국의 대형 시중은행 로이즈가 스스로를 “영국 최대의 핀테크 기업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는 소식은 전통 금융 산업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5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은행이 더 이상 자신을 단순한 금융기관이 아니라 ‘기술 기업’으로 규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로이즈는 2800만 고객의 익명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고 인공지능(AI) 기반 자동 검증 시스템을 도입해 비용 구조를 대폭 개편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내부 앱 862개를 폐기하고 데이터센터 15곳을 폐쇄하는 대신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다. 컴플라이언스와 내부 통제 역시 상당 부분을 기계 학습 기반 자동 시스템으로 바꾸고 있다. 목표는 분명하다. 은행을 넘어 데이터와 기술을 판매하는 금융 플랫폼으로의 전환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거대한 경쟁 환경의 변화가 있다. 인터넷은행과 핀테크 기업의 부상이다. 런던의 핀테크 기업 레볼루트는 이미 전 세계 7000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고 기업 가치도 750억 달러에 이른다. 전통 금융기관이 기술 기업과 직접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금융의 본질이 자본에서 데이터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은행의 경쟁력은 지점망과 자금 규모였다. 그러나 이제 경쟁력의 핵심은 데이터와 알고리즘, 그리고 플랫폼이다. AI와 블록체인, 가상화폐 기술이 금융 산업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의 흐름에서 한국 금융 산업도 예외일 수 없다. 국내 은행과 카드사들도 결제 데이터와 금융 데이터를 활용한 비금융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데이터 상품화를 추진하고 있고 삼성카드와 신한카드는 결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솔루션과 맞춤형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데이터 경제의 흐름을 인식한 움직임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한국 금융 산업의 변화 속도는 글로벌 흐름에 비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 금융은 여전히 규제 중심 구조에 묶여 있고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는 데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금융 산업의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과도한 안정 지향은 변화의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한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감한 투자와 기술 혁신 그리고 장기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술을 향한 집요한 도전이 있었다.
그렇다면 금융 산업에서는 왜 이러한 도전이 어려운 것인가.
공자는 『중용』에서 “군자지도(君子之道)는 조조연연(造造然然)하여 일상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멀리 이른다”고 말했다. 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방향을 정하고 꾸준히 나아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뜻이다. 지금 금융 산업이 맞이한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작은 혁신이 축적되어 산업의 구조를 바꾸게 된다.
AI와 가상화폐, 데이터 경제의 시대는 금융 산업의 판을 다시 짜고 있다. 은행은 더 이상 단순한 금융 중개기관이 아니다. 데이터 기업이며 기술 기업이고 플랫폼 기업이다. 금융의 미래는 기술과 결합된 새로운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한국 금융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데이터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 AI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금융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을 포함한 새로운 금융 영역에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 세계 금융의 경쟁은 단순한 은행 간 경쟁이 아니다. 기술 경쟁이며 데이터 경쟁이다. 금융과 IT의 경계는 이미 사라지고 있다. 전통 은행이 기술 기업으로 변신하는 시대에 한국 금융이 여전히 과거의 틀에 머문다면 미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와 디지털 소비 환경을 갖고 있다. 모바일 금융과 전자결제 분야에서도 이미 강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기반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한국 금융 역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용기다. 기술 변화의 시대에 가장 위험한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금융 산업 역시 혁신을 통해 스스로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AI와 가상화폐 시대의 금융은 더 이상 과거의 은행이 아니다. 이제 한국 금융도 안정만을 지키는 산업이 아니라 기술과 데이터 경쟁에 뛰어드는 산업으로 변해야 한다. **K반도체가 세계 산업 지형을 바꾸었다면 K금융 역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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