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GTC 2026 현장에서 글로벌 인공지능(AI) 패권을 둘러싼 반도체 기업 간 전략 경쟁이 본격화됐다. 엔비디아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차세대 메모리 주도권을 놓고 복합적인 협력과 견제를 병행하는 구도가 뚜렷해졌다는 평가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기술 발표를 넘어, 엔비디아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전략을 가늠하는 시험대로 작용했다. 동시에 한국 메모리 기업들은 기존 생산 중심 역할을 넘어 설계 단계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며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강화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개막한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6'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왼쪽)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함께 SK하이닉스 부스를 돌아보고 있다.[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부스에 전시된 엔비디아의 '베라 루빈'에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남긴 'JENSEN ♡ SK HYNIX' 사인. [사진=SK하이닉스]
가장 주목된 장면은 젠슨 황 최고경영자의 행보다. 그는 SK하이닉스 부스를 찾아 차세대 가속기 모델에 서명하며 협력을 강조하는 한편, 기조연설에서는 삼성이 자사 추론용 칩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특정 기업에 대한 일방적 의존을 피하면서 공급망 균형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이 같은 행보는 급증하는 AI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단일 공급망 의존은 납기 지연과 가격 협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TSMC와 SK하이닉스 중심 구조에 삼성전자를 포함시키며 경쟁 구도를 유도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국 기업들도 수동적 대응에 머물지 않고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최태원 회장은 현장에서 HBM 중심 생산 확대에 따른 D램 공급 불균형 가능성을 언급하며, 메모리 산업 전반의 수급 관리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 공급자가 아닌 시장 조율자로서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설계·파운드리·패키징을 통합한 턴키 생산 역량을 전면에 내세웠다. 데이터 처리 병목을 줄이고 납기를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차별화 전략을 분명히 했다. 특히 차세대 HBM 제품을 공개하며 기술 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의지도 드러냈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GTC 2026 현장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좌측부터 황상준 메모리개발담당 부사장, 엔비디아 젠슨 황 CEO,한진만 파운드리 사업부장 사장. 제품은 사진 좌측부터 삼성전자 HBM4 코어다이 웨이퍼와 그록(Groq) LPU 파운드리 4나노 웨이퍼. 각 웨이퍼에는 'AMAZING HBM4'와 'Groq Super FAST'라는 젠슨 황 CEO의 친필 서명이 적혀있다[사진=삼성전자]
현재 AI 반도체 시장은 단일 기업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상호 의존성이 높은 협력 체제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엔비디아의 GPU 설계 경쟁력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기술이 뒷받침돼야 완성된다. 반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엔비디아 플랫폼을 통해 고부가가치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AI 산업의 중심이 학습에서 추론으로 이동하면서 맞춤형 메모리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단순 생산 능력뿐 아니라 설계와 패키징을 포함한 통합 역량이 핵심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결국 이번 GTC는 글로벌 AI 반도체 생태계가 ‘경쟁적 협력’ 구조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 무대로 평가된다. 공급망 주도권을 둘러싼 미묘한 균형 속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전략적 입지는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