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법률은 인간의 마지막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사실관계를 가리고 책임을 나누는 일은 결국 사람의 판단에 기대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계가 흔들리고 있다.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사건을 분석하고 계약서를 검토하며 서면 초안까지 작성하는 인공지능이 법률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물음은 달라졌다. 인공지능이 변호사를 대체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이미 어디까지 들어왔는가가 핵심이다.
국내에서도 변화는 시작됐다. 법원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재판지원 시스템을 시범 도입했고 허위 사건번호를 걸러내는 장치도 마련했다. 법관을 위한 가이드라인도 제시됐다. 기술 도입과 통제를 함께 설계하는 흐름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되 판단의 책임은 인간에게 남긴다는 원칙이 전제돼 있다.
시장에서는 움직임이 더 빠르다. 국내 리걸테크는 판례 검색을 넘어 계약 검토와 문서 작성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AI 변호사 허용 논의도 본격화됐다. 변호사 고유 영역과 기술 서비스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지가 현실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해외는 이미 다른 단계에 올라 있다. 미국과 영국의 대형 로펌들은 인공지능을 보조 수단으로 두지 않는다. 실사와 계약 검토, 기업 인수합병 전 과정에 연결된 업무 흐름 속에 인공지능을 결합하고 있다. 법률정보 기업들도 단순 검색을 넘어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체계로 이동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법률서비스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속도가 빨라질수록 한계도 또렷해진다. 해외 법원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허위 판례 인용에 대해 강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가짜 판례를 인용한 사례에 제재금이 부과되기도 했다. 기술은 정교해졌지만 결과의 진실성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기준은 분명하다. 활용은 가능하지만 검증과 책임은 인간이 진다.
최근 법률서비스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판결의 예측 가능성에 대한 의문, 사건 처리 지연, 일부 사건에서 드러난 판단의 편차가 누적되면서 법률시장 전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판단보다 데이터와 일관성에 기반한 인공지능이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등장한다. 인공지능 도입 요구가 단순한 기술 선호를 넘어 기존 시스템에 대한 신뢰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은 가볍지 않다.
결국 흐름은 한 방향으로 모인다. 인공지능은 변호사를 밀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변호사의 일을 바꾸는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반복 작업과 정보 정리는 기계가 맡고 판단과 책임은 인간이 짊어지는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다. 경쟁력의 기준도 달라졌다. 인공지능을 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게 통제하고 검증하느냐다.
이제 선택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인공지능 법률서비스를 허용할 것인가를 두고 머뭇거릴 단계는 지났다.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어떤 책임을 부과할 것인지가 남았다. 기술을 외면하면 뒤처지고 통제를 놓치면 신뢰가 흔들린다.
법률은 신뢰 위에 선다.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이라도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법은 계산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마지막 판단의 책임은 결국 사람에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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