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약가 45%로 내린다…제약사들 "R&D 멈출 수도"

안서희 기자 2026-03-27 10:27:31
정부, 단계적 인하로 연착륙 유도 제약업계 "R&D 위축 불가피"…정부 "혁신 중심 전환"
[사진=AI 생성 이미지]

[경제일보] 정부가 복제약(제네릭 의약품) 약가를 대폭 인하하기로 하면서 제약업계와의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산업 위축 우려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26일 제6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고 제네릭과 특허 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5%로 하향 조정하는 '국민건강보험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심의·의결했다.

이번 결정은 지난해 말 정부가 예고했던 40%대 초반 인하안보다는 완화된 수치지만 업계가 제시했던 '마지노선'인 48.2%를 하회한 수치다. 복제약 약가 인하는 2012년 이후 14년 만의 인하로 정부는 향후 4년간 약 1조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개편안의 핵심은 '단계적·차별적 인하'다. 정부는 갑작스러운 충격을 줄이기 위해 이미 등재된 약제를 2012년 기준 전후 두 그룹으로 나눠 향후 10년간(2036년까지) 순차적으로 가격을 내리기로 했다. 특히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높은 '혁신형 제약기업'에는 49%, 이번에 신설된 '준혁신형 제약기업'에는 47%의 산정률을 적용해 각각 4년과 3년의 유예 기간을 주는 '특례'를 부여했다. 신약 개발 능력을 갖춘 기업에는 연착륙의 기회를 주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제약업계의 표정은 어둡다. 제약·바이오 협회 등으로 구성된 '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27일 긴급 회의를 소집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업계는 이번 인하가 단순한 매출 감소를 넘어 국내 신약 개발 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네릭 판매를 통해 얻은 수익을 신약 R&D에 재투자하는 국내 산업 구조상 자금줄이 마르면 결국 미래 성장 동력이 멈출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업계 관계자는 “복제약은 국내 제약사의 중요한 수익 기반”이라며 “이를 급격히 축소하면 신약 개발로 전환할 체력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대위는 “현재 기업들이 R&D와 설비 투자를 축소하거나 재검토하고 신규 채용을 포기하며 수익성이 낮은 의약품의 허가 취소와 생산라인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경영 위기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제약산업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국가 전략산업”이라며 “한번 무너진 산업 생태계는 복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복지부는 이번 개편이 '제네릭 의존형'인 국내 산업 구조를 '혁신형 신약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라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제네릭 약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아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약가 인하로 절감된 재원을 희귀·난치질환 치료제의 급여 확대와 혁신 신약의 보상 체계 강화에 투입해 국민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정부와 업계의 시각차가 팽팽한 가운데 약가 인하의 파고는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 제약업계는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고 있어 약가 제도를 둘러싼 진통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