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국내 제약업계가 '꿈의 비만약'으로 불리는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뜨거운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JW중외제약이 해외 유망 후보물질을 도입하며 레이스에 본격 합류한 가운데 앞서 한미약품과 유한양행 등 전통 강자들도 각기 다른 전략으로 차별화된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JW중외제약은 최근 중국 베이징 소재의 바이오 기업 ‘간앤리 파마슈티컬스’와 GLP-1 수용체 작용제 신약 후보물질인 ‘보팡글루타이드(GZR18)’에 대한 국내 독점 라이선스-인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의 규모는 약 8110만 달러(약 1100억원)로 JW중외제약은 국내 임상·허가 및 상업화 독점 권리를 갖게 된다.
보팡글루타이드의 가장 큰 차별점은 ‘투여 편의성’이다. 기존 GLP-1 치료제들이 주로 주 1회 투여하는 방식인 데 반해 보팡글루타이드는 2주 1회 제형으로 개발돼 환자들의 복약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중국 임상 2b상 결과 30주 투여 시 평균 17.29%의 체중 감소 효과를 입증하며 기존 주 1회 치료제 대비 짧은 기간 내 우수한 효능을 보였다. JW중외제약은 올해 하반기 비만 및 제2형 당뇨병에 대한 국내 임상 3상을 동시에 추진해 시장에 빠르게 안착한다는 전략이다.
JW중외제약 외에도 국내 주요 제약사들은 각기 다른 타깃 기전과 제형을 내세워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한미약품은 국내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주자 중 하나로 자체 플랫폼 기술인 ‘H.O.P(Hanmi Obesity Pipeline)’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가장 주목받는 후보물질은 에페글레나타이드다. 이 약물은 GLP-1 수용체 작용제로 한미약품의 자체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장기지속형 제제다. 임상 3상을 완료한 상태로 현재 허가 절차를 준비 중이며 이르면 올 하반기 출시가 예상된다.
임상 결과도 긍정적이다. 약 40주간 투여한 임상시험에서 평균 체중 감소율은 약 9.75%로 나타났으며 위약군 대비 유의미한 개선 효과를 입증했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중인 주요 GLP-1 비만 치료제들과 비교해도 경쟁력을 갖춘 수준으로 평가된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단순 체중 감량을 넘어선 질환 예방 효과다. 약 4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대규모 연구에서 심혈관 및 신장 질환 위험 감소 가능성도 확인되면서 에페글레나타이드는 향후 ‘대사질환 치료제’로 확장될 가능성을 확보했다.
부작용 개선 측면에서도 강점이 부각된다. 랩스커버리 기술을 통해 약물이 체내에서 서서히 방출되도록 설계돼 기존 GLP-1 계열 약물에서 흔히 나타나는 구토, 설사 등의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를 시작으로 차세대 비만 치료제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GLP-1·GIP·글루카곤(GCG)을 동시에 타깃하는 삼중작용제 계열과 근손실을 최소화하는 UCN2 기반 신약 등이 개발 중이다. 이는 기존 비만 치료제의 한계로 지적돼 온 ‘근육 감소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유한양행도 장기지속형·경구제까지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본격적인 파이프라인 확대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속형 ‘YHP2402’가 꼽힌다. 이 후도물질은 인벤티지랩 공동 개발중으로 기존 주 1회 투여 방식에서 나아가 월 1회 투여가 가능한 장기지속형 주사제로 개발되고 있다. 투약 편의성을 크게 개선한 것이 특징으로 상용화될 경우 환자 순응도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한양행은 자체 신약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YH34160’은 GDF15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후보물질로 뇌의 식욕 조절 수용체에 작용해 체중 감소를 유도하는 기전을 갖는다. 전임상 단계에서 유의미한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된 것으로 알려지며 기존 GLP-1 계열과 차별화된 접근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 다른 파이프라인 ‘YH25724’는 글로벌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과 공동 개발 중인 물질이다. GLP-1과 FGF21에 동시에 작용하는 이중기전 치료제로 비만뿐 아니라 지방간염(MASH) 적응증까지 겨냥하고 있다. 대사질환 전반을 아우르는 확장성이 강점으로 향후 후속 임상 진행이 계획돼 있다.
이와 함께 유한양행은 경구용 비만 치료제 개발에도 착수했다. ‘YH-GLP-1RA’로 불리는 합성신약은 먹는 형태의 GLP-1 계열 치료제로 2026년 초 임상 1상 진입을 목표로 전임상 연구가 진행 중이다. 현재 주사제 중심의 시장 구조를 감안할 때 경구제 개발은 향후 게임체인저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대원제약은 주사제의 통증과 번거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마이크로니들 패치형 비만 치료제 ‘DW-1022’를 개발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을 미세한 바늘이 달린 패치 형태로 전환한 것이다. 환자가 직접 피부에 붙이기만 하면 체내로 약물이 전달되는 방식으로 주사 공포증이 있는 환자들에게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상온 보관이 용이해 유통 편의성 측면에서도 큰 강점이다. 최근 임상 1상 승인을 받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이 비만 치료제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폭발적인 시장 성장성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아 시아 태평양 지역의 GLP-1 시장 규모는 2025년 약 54억 달러에서 2033년 169억 달러(약 23조원)로 연평균 14%씩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업계 관계자는 “위고비, 젭바운드 등 글로벌 신약의 공급 부족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효능은 유지하면서 투여 주기를 늘리거나 제형을 변경하는 등 ‘개량된 편의성’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며 “JW중외제약의 이번 계약으로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의 세대교체 시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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