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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국 칼럼] 활과 약 한 알이 말하는 것

이재현 광고국 차장 2026-04-16 15:19:02
빠른 길의 유혹을 이긴 축적의 힘
한국유나이티드제약 CI [사진=한국유나이티드제약]


[경제일보] 16일 문화예술계와 산업계에서 각각 의미 있는 소식이 전해졌다. 장한나가 예술의전당 사장에 임명됐다. 개관 이후 첫 음악인 출신 여성 수장이다. 같은 시기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약가 인하 압박 속에서도 개량신약 중심 전략을 꾸준히 밀어붙이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쪽은 예술이고 다른 한쪽은 산업이다. 서로 다른 세계의 소식처럼 보이지만 두 장면은 같은 결을 품고 있다. 남들이 빠른 길을 말할 때 돌아가더라도 자기 길을 택했다는 점이다.
 

장한나는 이미 세계적 첼리스트로 이름을 얻은 뒤 다시 출발선에 섰다. 2007년 지휘자로 변신한 것이다. 독주자가 한 사람의 완성으로 평가받는 자리라면 지휘자는 수십 명의 연주자를 하나의 소리로 묶어내야 한다. 더 넓은 시야와 더 무거운 책임이 요구된다. 이미 얻은 명성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배움의 길로 들어선 선택이었다.
 

19년이 흐른 지금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기관의 책임자가 됐다. 아홉 살에 처음 올랐던 무대의 수장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한 개인의 성공담을 넘어선다. 재능은 출발점일 뿐이며 긴 시간의 연마와 시야의 확장이 결국 사람을 더 큰 자리로 이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약업계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국내 제약사는 오랫동안 제네릭 판매와 약가 규제 사이에서 수익성을 고민해 왔다. 연구개발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실패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기술을 중간에 넘기거나 단기 매출 제품에 머무르는 선택이 반복돼 왔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상대적으로 느린 길을 택했다. 개량신약은 완전 신약처럼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한다. 대신 복용 편의성을 높이고 효능 지속성을 개선하며 여러 성분을 한 알에 담아 환자의 일상을 바꾸는 데 강점이 있다. 눈에 띄는 구호보다 실제 효용에 집중한 전략이다. 제품이 하나둘 쌓이며 매출 기반이 넓어졌고 재무 체력도 함께 다져졌다.
 

우리는 혁신을 대개 극적인 사건으로 기억한다. 하루아침에 판을 뒤집는 발명이나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하는 성공 신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의 혁신은 대체로 소리 없이 자란다. 긴 훈련을 견디는 사람, 당장의 유혹을 미루는 기업, 오늘의 박수보다 내일의 토대를 택하는 결정이 쌓여 변화를 만든다.
 

장한나가 활을 내려놓고 지휘봉을 든 일과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연구개발 축적을 선택한 일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크게 성공한 이들의 공통점은 재능이나 운보다 방향에 있다. 남들이 서두를 때 서두르지 않았고 남들이 쉬운 길을 찾을 때 기본으로 돌아갔다.
 

더 빨리 더 쉽게 더 크게를 외치는 시대다. 그러나 오래 남는 성취는 늘 다른 자리에서 나온다. 시간을 견딘 축적, 흔들리지 않은 원칙, 묵묵히 제 길을 걸은 이들의 발걸음 끝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