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노동의 기여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현대차가 세계 시장에서 거둔 성과 뒤에는 생산 현장의 숙련과 헌신이 있었다. 실적이 좋아졌다면 그 과실을 함께 나누자는 주장도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요구의 수준과 방향이다. 올해 현대차 노조가 내건 임단협 요구안은 보상의 범위를 넘어 기업 운영의 원칙까지 건드리는 수준으로 읽힌다.
노조는 지난해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기본급 인상과 상여금 확대, 주 4.5일제, 정년 연장, 완전 월급제도 함께 내걸었다. 여기에 협력업체 직원까지 성과급 지급 대상에 포함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임금 협상이라기보다 기업의 이익 배분 방식 전반을 다시 짜자는 요구에 가깝다.
숫자로 보면 부담은 더 선명해진다. 현대차가 밝힌 2025년 당기순이익은 약 10조4천억원이다. 그 30%면 3조원이 넘는다. 회사가 주주에게 제시한 배당 정책이 순이익의 25%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조 요구액은 그보다 크다. 투자자에게 약속한 몫보다 더 큰 금액을 성과급으로 먼저 내놓으라는 요구를 시장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기업은 신뢰 위에서 자본을 조달하고 그 자본으로 미래를 준비한다. 그 질서를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더 우려되는 대목은 시점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최대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줄었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거센 전환기에 들어섰다. 관세 장벽은 높아지고 경쟁국의 추격은 빨라졌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배터리 공급망, 자율주행 기술까지 어느 하나 막대한 자금이 들지 않는 분야가 없다. 현대차가 수십조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 계획을 내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벌어들인 이익을 다시 미래에 투입하지 않으면 다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런데 노조 요구안에는 미래 산업을 함께 짊어지겠다는 메시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익이 나면 더 많이 배분하라고 하고 산업 전환의 비용과 위험은 회사가 감당하라는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한 노사 관계가 어렵다. 보상에는 권리가 따르지만 책임도 따른다. 오늘의 성과를 함께 나누려면 내일의 불확실성도 함께 감수해야 한다.
협력업체 직원까지 성과급을 주자는 요구도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원청과 협력사의 격차를 줄이고 함께 성장하자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해법은 다른 곳에 있다. 납품 단가의 현실화, 기술 지원, 생산성 향상, 공정한 거래 관행 정착이 우선이다. 임단협 한 번으로 원청 순이익을 재분배하는 방식은 박수는 받을 수 있어도 오래가기 어렵다.
현대차는 국내 제조업에서 드물게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운 기업이다. 이 회사가 흔들리면 협력업체와 지역경제, 수출 전선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현대차 노사의 협상은 한 기업 내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산업 경쟁력과 일자리의 미래가 함께 걸려 있다.
노조의 힘은 필요하다.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고 경영진의 독주를 견제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그러나 힘은 방향이 맞을 때 존중받는다. 올해 교섭의 출발점은 얼마나 더 가져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더 강한 회사를 만들 것인가여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일자리도 더 큰 보상도 가능하다.
성과급은 한 해의 보상이다. 투자는 다음 세대의 생존을 위한 준비다. 둘이 충돌할 때 무엇을 앞세워야 하는지는 어렵지 않다. 지금 현대차 노조에 필요한 것은 더 큰 청구서가 아니라 더 긴 안목이다. 미래는 회사 혼자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그 미래를 함께 누릴 사람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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