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대한민국 경제가 1분기 국내총생산(GDP) 1.7% 성장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국은행 전망치(0.9%)를 크게 웃도는 이른바 ‘깜짝 성장’이다. 수치만 보면 경기 회복세가 뚜렷해 보이고 증시 역시 고점 부근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표 이면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사뭇 다르다. 환희보다는 경계심이 앞선다. 우리는 지금 반도체라는 거대한 ‘착시’ 속에서 경제 체력의 약화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번 성장의 일등 공신은 단연 반도체다. 1분기 성장의 절반 이상이 반도체 제조업에서 나왔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 급증이 한국 경제를 떠받친 셈이다. 그러나 반도체를 제외하면 풍경은 달라진다.
민간 소비는 0.5% 증가에 그쳤고 4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9.2로 기준선 100 아래로 떨어졌다. 이는 2024년 12월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이다. 현장에서는 “지표는 좋은데 장사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정 산업의 호황이 전체 경기 개선으로 포장되는 왜곡이 나타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반도체 중심 성장의 지속 가능성이다. 참여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 전 장관의 경고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그는 한국 반도체 경쟁력이 영속적이지 않으며 현재의 수익을 미래 투자로 연결하지 못하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과 각국의 보조금 경쟁 등 글로벌 반도체 환경은 갈수록 불확실해지고 있다. 지금의 호황이 미래 성장 기반을 잠식하는 ‘선(先)소비’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중동 전쟁 여파까지 더해지고 있다. 1분기 지표에는 전쟁 영향이 제한적으로 반영됐지만 4월 이후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망 차질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는 물가와 금리를 동시에 압박하는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가 고유가 피해지원금 지급을 추진하고 있지만 단기 처방이 물가 상승 압력을 자극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한계에 직면한 자영업 구조를 재편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의 정책 대응이다.
지금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1분기 성장은 기저 효과와 반도체 편중이 결합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경제의 기초 체력이 개선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필요한 것은 냉정한 현실 인식과 구조 개혁이다. 반도체에서 창출된 수익을 AI, 바이오, 양자컴퓨팅 등 차세대 산업과 기초 과학기술 투자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내수 침체를 해소할 규제 개혁과 노동시장 개선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호황의 착시에 안주한다면 반도체라는 버팀목이 흔들리는 순간 한국 경제는 큰 충격에 직면할 수 있다.
위기는 언제나 가장 좋은 성적표 뒤에서 시작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1.7% 성장’에 대한 안도가 아니라 장기 침체 가능성에 대비하는 냉철한 긴장감이다. 정부는 현재의 성과를 미래 대비 자산으로 전환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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