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데스크 칼럼] 가정의 달에 돌아본 기러기 아빠의 눈물

한석진 기자 2026-05-10 09:12:49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의 한 화훼농원에서 관계자가 가정의 달 5월을 앞두고 카네이션 출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5월이면 세상은 가족을 이야기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이어지고 방송과 광고는 웃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비춘다.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는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의 가족이 언제나 그런 모습인 것은 아니다. 어떤 가족은 오래전부터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같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있지만 마음의 거리는 이미 멀어진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공개된 한 기러기 아빠의 사연은 그래서 많은 생각을 남긴다. 50대 가장 A씨는 10년 넘게 한국에 남아 돈을 벌었다. 아내와 딸은 미국에서 생활했다. A씨는 원룸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생활비와 학비를 보냈다고 했다. 그렇게 미국으로 송금한 돈만 7억~8억원 가까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본 것은 미국에서 파티를 즐기고 골프를 배우는 아내의 모습이었다. 딸이 대학에 입학한 뒤 이제는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돌아온 것은 “계속 한국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었다고 한다. A씨는 그 순간 자신이 남편이나 아버지가 아니라 생활비를 보내는 존재로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사연은  부부 갈등으로만 보기 어렵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기러기 가족의 그림자가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때 기러기 가족은 성공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자녀 교육을 위해 아버지는 한국에 남고 어머니와 자녀는 해외로 떠났다. 영어와 해외 학벌이 경쟁력이 되던 시절이었다. 부모의 희생은 미덕으로 포장됐다. 공항에서 가족을 배웅하고 혼자 돌아오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책임감 강한 가장의 모습처럼 소비됐다.
 

그 시절에는 누구도 크게 묻지 않았다. 가족이 몇 년씩 떨어져 살아도 정말 괜찮은 것인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영어와 스펙만인지 말이다. 중요한 것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것이었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가족의 분리도 쉽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사람의 삶은 입시 전략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몇 년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족의 시간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아이는 현지 문화에 익숙해지고 배우자 역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한다. 반면 한국에 남은 가장은 혼자 늙어간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지만 정작 가족의 일상에서는 점점 멀어진다.

 

무엇보다 가장 무거운 문제는 가족이 감정이 아니라 경제로만 유지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생활비는 꼬박꼬박 보내지만 대화는 줄어든다. 서로의 하루를 묻는 시간보다 송금 날짜가 더 중요해진다. 부부 관계도 점차 생활비를 보내는 사람과 그것을 받는 관계처럼 변해간다.
 

이번 사연에서 많은 이들이 씁쓸함을 느낀 것도 그 때문이다. A씨가 미국으로 가겠다고 했는데도 계속 한국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말이 돌아왔다는 대목이다. 그 순간 가족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아니라 경제적 역할만 남은 관계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모든 기러기 가족이 이런 결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믿고 버티며 다시 함께 살아가는 가족도 많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기러기 생활 자체를 지나치게 쉽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몇 년쯤 떨어져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족은 그렇게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
 

같이 살아야 서로의 변화를 안다. 함께 밥을 먹어야 말다툼도 하고 화해도 한다. 아이 역시 부모와 시간을 보내며 자란다. 가족은 결국 일상을 함께 쌓아가는 관계다. 생활비만으로 유지되는 공동체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이번 사연에서 가장 아픈 부분은 딸이 A씨를 낯설어했다는 대목이다. 등록금은 보냈지만 함께한 시간은 부족했다.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A씨는 늘 한국에 있었고 딸은 미국에서 자랐다. 그 시간의 간극은 돈으로 메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한국 사회가 가장 늦게 돌아봐야 할 문제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랫동안 가장의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병원을 가고 혼자 늙어가는 삶도 가족을 위한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은 기계처럼 살 수 없다. 가족 안에서 자신의 자리가 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 누구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이야기가 이제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은퇴를 앞두고 가족과 대화가 끊긴 중년 가장도 적지 않다. 자녀와 어색해지고 집 안에서 점점 말이 줄어드는 경우도 많다. 회사에서는 평생 버텼지만 정작 가정에서는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는 삶이다.
 

이번 사연을 단순히 어느 한 배우자의 잘못으로만 몰아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사회가 가족보다 경쟁을 앞세워온 시간에 있다. 좋은 대학과 영어 실력을 위해서라면 가족의 분리도 감수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외로움은 늘 뒤로 밀렸다.
 

하지만 가족은 원래 함께 사는 이름이다. 같은 공간에서 부딪히고 대화하고 시간을 나누며 살아가는 관계다. 돈은 가족을 유지하는 수단일 수는 있어도 가족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송금이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번 사연에서 A씨가 느꼈던 허탈함도 결국 거기서 시작됐을 것이다. 돈을 잃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가족을 위해 살아왔는데 정작 가족 안에는 자신의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가정의 달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가족 광고가 아니다. 지금 우리 가족은 정말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일이다. 아이의 스펙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는 일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의 희생만 당연하게 요구되고 있지는 않은지도 돌아봐야 한다.
 

사랑은 송금액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돈을 보냈다고 해도 함께 살아온 시간을 대신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