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인사이트

[편집인 칼럼] 시진핑 주석의 '도가도 비상도'와 드러난 패권 야망…대한민국은 복합 위기의 파고를 넘을 준비가 되었는가

양규현 사장 2026-05-22 15:32:59
양규현 경제일보 사장
[경제일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최근 행보는 더 이상 단순한 외교 활동의 범주로 설명하기 어렵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관세 압박과 기술 봉쇄 속에서 숨을 고르던 중국은 이제 노골적으로 세계 질서 재편의 중심을 자임하고 있다. 과거 덩샤오핑 시대의 ‘도광양회(韜光養晦)’가 빛을 감춘 채 힘을 축적하는 전략이었다면, 지금의 중국은 ‘유소작위(有所作爲)’를 넘어 미국과 패권을 양분하려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시진핑 주석이다.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푸딘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줫다.. 특히 미·중 정상회담 직후 곧바로 중러 밀착을 과시한 것은 미국 중심 국제 질서에 대한 공개적 도전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제재와 압박 정책을 비판하며 사실상 대북 제재 체제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국제사회가 유지해온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공동성명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동북아 질서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의 전략은 단순히 북한을 감싸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중국의 오랜 약점인 에너지 안보와 지정학적 한계를 돌파하려는 계산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제조국이지만 에너지 수입의 상당 부분을 미국 해군이 장악한 해상 교통로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과 믈라카 해협은 중국 경제의 생명선과도 같다.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심화되거나 남중국해에서 충돌이 발생할 경우 중국의 에너지 공급망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른바 ‘믈라카 딜레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새로운 북방 루트를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그 핵심이 바로 북한 두만강 하구와 동해 진출이다. 두만강 출구와 동해 항만이 연결되면 중국 동북 3성은 남쪽을 우회하지 않고도 동해를 통해 북극항로와 러시아 극동 지역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순한 물류 혁신이 아니라 중국의 지정학적 운명을 바꾸는 전략적 전환이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시장을 잃은 상황에서 중국이라는 거대 소비 시장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북중러는 각자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새로운 북방 경제·군사 축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대한민국의 안보 환경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중국이 북한을 발판으로 동해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면, 한반도 주변 해양 질서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동해가 중러 해군의 전략 공간으로 변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중러의 사실상 비호 움직임까지 더해진다면 한국은 상시적인 안보 압박 속에 놓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시진핑은 ‘평화’와 ‘다자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중국 중심의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축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이 노자의 《도덕경》 제1장의 구절이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말로 규정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노자는 권력과 질서를 절대화하는 순간 그것은 본래의 생명력을 잃고 위선으로 변질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은 평화와 공존이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새로운 패권 질서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도덕경》 제18장의 “대도가 폐하면 인의가 나타나고, 지혜가 출현하면 큰 위선이 있다”는 구절은 지금의 국제 정세를 떠올리게 한다. 중국이 말하는 ‘동북아 평화’는 북한 비핵화라는 국제 규범을 지워버린 자리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는 진정한 평화라기보다 전략적 이해관계를 포장한 정치적 언어에 가깝다.
 
동시에 현재의 국제 질서 변화에는 미국의 책임 또한 존재한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는 동맹국들에게 깊은 불안을 안겼다. 전통적 가치 동맹보다 경제적 거래를 우선시하는 접근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신뢰를 약화시켰고, 중국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유럽과 중동,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베이징과 거리를 좁히는 현상 역시 미국 중심 질서의 균열을 반영한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현실은 냉혹하다. 이제 한국은 단순히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수준을 넘어 복합적인 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 축이다. 그러나 동시에 북중러 밀착이 초래할 경제·안보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층적 외교도 절실하다. 감정적 진영 논리나 단순한 친미·친중 프레임으로는 거대한 국제 질서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이럴 때 필요한 자세가 바로 ‘신독(愼獨)’이다. 《대학》과 《중용》에서 말하는 신독은 홀로 있을 때에도 스스로를 경계하며 본질을 잃지 않는 태도를 뜻한다. 국제 질서가 요동치는 시대일수록 대한민국은 외부 강대국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국익 중심의 냉철한 전략적 사고를 유지해야 한다. 경제 안보와 에너지 공급망, 첨단 산업 경쟁력, 군사 대비 태세를 동시에 강화하는 복합 전략이 요구되는 이유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냉전의 문턱에 서 있다. 북중러의 전략적 연대와 미국 중심 질서의 흔들림은 단기간에 끝날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향후 2~3년 안에 글로벌 경제와 안보 질서를 뒤흔드는 거대한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이미 그 전조를 목격하고 있다.
 
구한말 조선은 국제 정세의 거대한 흐름을 읽지 못한 채 강대국들의 각축장 속에서 국권을 잃었다. 지금 대한민국 앞에 놓인 상황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착시적 안정과 단기적 경제 논리에 취해 국제 질서 재편의 본질을 외면한다면 역사는 다시 반복될 수 있다.
 
위기는 멀리 있지 않다. 이미 우리 문앞에 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권의 정쟁이 아니라 국가적 전략 각성이다.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변화하는 국제 질서를 냉정하게 직시하고 장기적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시진핑의 거대한 패권 구상과 미중 충돌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는 길이며,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유일한 해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