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설] 반도체는 웃는데 청년은 운다…'고용 없는 성장'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경제일보 2026-06-12 07:56:46
서울 시내 한 대학교 일자리플러스센터 채용 게시판.[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과 첨단기술 분야의 경쟁력 강화는 국가 경제의 미래를 밝히는 긍정적인 신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화려한 수출 실적 뒤에 가려진 현실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5월 고용동향은 제조업 취업자가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전체 취업자 수가 17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청년층의 일자리 감소와 소득 악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국민은 일자리를 잃는 ‘고용 없는 성장’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있다.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고 수출이 증가하더라도 국민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는다면 그 성장은 결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최근의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기술집약 산업이다. 생산성과 수익성은 높지만 자동화와 AI 기술이 확대되면서 과거처럼 대규모 고용을 창출하지 않는다. 기업은 성장하지만 일자리는 늘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셈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런 변화의 충격이 청년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20~30대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시기이지만 취업 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어렵게 취업하더라도 임금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비정규직이나 플랫폼 노동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득 감소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내수 침체와 기업 투자 감소를 불러오는 악순환을 만든다.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현상 역시 이러한 경제적 불안과 무관하지 않다.

AI 시대의 도래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문제는 기술 발전 자체가 아니라 그 변화에 대한 사회의 준비 부족이다. AI가 단순 반복 업무를 대체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동시에 새로운 산업과 새로운 직무도 만들어낼 수 있다.

정부와 기업, 교육기관이 협력해 신기술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고 직업 전환을 지원한다면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시장에만 맡겨 둔다면 청년층은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정책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수출 증가나 성장률 같은 거시 지표만으로 경제를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다. 성장의 과실이 얼마나 많은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는지, 양질의 일자리가 얼마나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AI 전환기에 맞춘 대대적인 직업 재교육과 디지털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청년층의 취업과 창업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들을 위한 사회안전망과 고용보험 제도를 현실에 맞게 보완해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보장해야 한다.

기업 역시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첨단기업들이 연구개발 투자뿐 아니라 인재 양성과 청년 채용 확대에 적극 나설 때 산업의 지속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기술 혁신과 고용 창출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추구해야 할 목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단순한 경기 회복이 아니다. AI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성장 모델과 고용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반도체 수출 신기록이라는 숫자에 취해 청년들의 한숨을 외면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은 결국 약화될 수밖에 없다. 고용 없는 성장은 지속 가능한 발전이 아니다. 성장과 일자리, 기술과 사람이 함께 가는 경제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국가 경쟁력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