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경찰이 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스타벅스코리아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진행된 이른바 ‘탱크데이’ 행사가 유공자들을 모욕했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첫 강제수사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공공범죄수사대는 이날 행사 기획과 승인 과정에 관한 자료를 확보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모욕 등의 혐의가 적시됐다. 지난 5월 5·18 유공자와 시민단체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등을 고소·고발한 지 두 달여 만이다.
경찰은 문제의 문구가 만들어지고 승인된 경위뿐 아니라 사건 직후 신세계그룹이 실시한 자체감사 과정도 살펴보고 있다. 회사가 어떤 자료를 확보했고 누구를 조사했는지, 감사 결과가 실제 사실관계를 충실히 반영했는지가 수사의 한 축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압수수색은 정 회장이 공개 사과를 한 뒤 이뤄졌다. 정 회장은 사건 다음 날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행사 경위와 승인 절차를 철저히 조사해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룹의 의사결정과 위험관리 체계도 다시 점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이 본사에 들어가 자체감사 자료까지 확보하게 되면서 당시 조사가 충분했는지를 다시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기업 내부에서 마무리한 조사를 수사기관이 강제수사를 통해 재검증하는 모양새다.
문제의 행사는 스타벅스코리아 커머스팀에서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팀장과 담당 본부장, 대표이사로 이어지는 결재선을 거쳐 최종 확정됐다.
행사명은 ‘탱크데이’였다. 홍보물에는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도 사용됐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라는 표현이 등장한 데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의 해명을 연상시키는 문구까지 함께 배치되면서 비판이 커졌다.
기획안 작성부터 디자인, 결재, 게시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쳤다. 신세계그룹 조사에서는 일부 결재자가 첨부자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승인한 사실도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결재 절차가 존재했지만 날짜와 문구가 지닌 의미를 걸러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개인의 표현 선택만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본사 차원의 검토와 승인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가 함께 문제로 떠올랐다.
신세계그룹은 사건 발생 직후 약 일주일간 내부조사를 벌였다. 행사에 관여한 직원들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손정현 당시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와 담당 임원을 해임했다.
다만 조사 과정에서 핵심 자료가 충분히 확보됐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행사 담당자 5명 가운데 3명이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탱크데이’라는 이름을 처음 제안한 직원도 제출 거부자에 포함됐다.
신세계그룹은 조사 결과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려는 고의성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주요 관계자의 휴대전화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를 종결한 것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됐다.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다면 고의성이 없었다고 단정하기보다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찰이 자체감사 부실 정황을 살피는 배경에도 이런 문제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조사 결과 발표 때도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이뤄진 조치가 실제 책임 주체와 어느 정도 일치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았다.
대표와 담당 임원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행사에 관여한 직원들은 직무에서 배제됐다. 동시에 행사 기획이나 승인과 직접 관계가 없었던 전국 매장 직원들도 역사 인식과 사회적 감수성 교육을 받았다.
스타벅스코리아는 6월 22일 전국 매장의 영업을 오후 3시에 마치고 직원 교육을 실시했다. 전국 매장이 동시에 조기 폐점한 것은 1999년 국내 진출 이후 처음이었다. 정 회장과 계열사 경영진도 별도의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교육의 필요성과 별개로 교육 대상의 범위를 두고는 논란이 이어졌다. 매장 직원들은 행사명을 정하지 않았고 홍보 문구 작성이나 승인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사고는 본사의 상품 기획과 결재 과정에서 발생했다. 고객 항의와 불매 움직임을 직접 상대해야 했던 것은 매장 직원들이었다. 여기에 조기 폐점과 교육까지 더해지면서 본사에서 발생한 문제의 부담이 현장으로 확대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회사가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한 것은 조직 전체의 인식을 개선하려는 조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린 책임자를 가려내는 일과 전 직원 교육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 직원 교육이 책임 규명을 대신할 수는 없다. 누가 기획안을 만들었고 결재 과정에서 누가 어떤 내용을 확인했으며 왜 문제를 걸러내지 못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자체감사는 이 같은 의문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다. 일부 조사 대상자의 휴대전화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가 끝났고 회사는 고의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의 압수수색은 회사 내부에서 확인하지 못한 자료와 결재 과정을 수사기관이 다시 들여다보는 절차다. 자체감사의 범위와 방식이 적절했는지도 수사 결과에 따라 평가받게 됐다.
형사책임은 증거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문제의 문구에 모욕의 고의가 있었는지, 피해자가 법률상 특정될 수 있는지, 정 회장과 경영진이 행사 기획이나 승인에 관여했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다.
정 회장이 행사 문구를 직접 정했거나 승인했다는 사실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압수수색이 이뤄졌다는 사정만으로 개인의 형사책임을 단정할 수도 없다.
다만 그룹 수장으로서의 경영 책임은 형사책임과 기준이 다르다.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이사까지 거친 행사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고 사후 감사마저 경찰 수사 대상이 됐다면 그룹의 내부통제와 의사결정 체계에 대한 책임은 정 회장에게도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 회장은 계열사의 주요 사업과 경영 방향에 적극적으로 관여해 온 인물이다. 그룹의 성과가 그의 리더십과 결단으로 설명돼 왔다면 내부통제 실패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는 말은 사과의 표현을 넘어 진상 규명과 후속 조치에 대한 약속으로 받아들여진다. 조사가 불완전했다면 그 한계를 공개하고 추가 확인에 나서는 것도 책임의 일부다.
이번 사태에서는 대표와 임원이 해임됐고 행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매장 직원들까지 교육 대상이 됐다. 반면 회사의 자체감사는 경찰의 압수수색을 통해 다시 검증받게 됐다.
권한이 경영진에 집중된 조직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과 부담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경찰 수사는 행사 기획과 승인 과정뿐 아니라 정 회장이 말한 ‘모든 책임’이 실제 수습 과정에서 어떻게 이행됐는지도 함께 돌아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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