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유한양행을 국내 대표 제약사로만 기억하기에는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삶이 남긴 흔적이 깊다. 약을 팔아 기업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독립운동에 자금을 보태고 직접 항일전선에 뛰어들었다. 해방 직전에는 미국 전략정보처(OSS)의 비밀작전에 참여해 일본 후방 침투까지 준비했다.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유한양행의 역사를 따라가면 기업의 성장사와 독립운동사가 맞닿아 있다.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유한양행을 다시 주목하는 이유다. 유한양행의 시작은 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양에서 태어난 유일한 박사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과 사업을 이어갔다. 미시간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사업가로 성공한 유 박사는 1926년 귀국해 유한양행을 세웠다. 당시 조선의 열악한 보건환경을 직접 목격한 것이 창업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유 박사의 삶에서 기업과 독립운동은 별개의 길이 아니었다. 그는 1919년 3·1운동 이후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미주 대한인국민회에서 활동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 건설을 위한 경비 조달에 참여했고 독립운동 후원에도 힘을 쏟았다. 1936년에는 미주 한인사회가 항일 역량을 결집하는 과정에도 참여했다. 총회관 건축위원으로 활동하며 국민회의 기반을 다지는 한편 중국 지역 항일세력과 임시정부에 대한 지원도 이어갔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면서 활동은 더욱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유 박사는 미국 전략정보처 OSS와 연결됐다.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에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군사적 기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유 박사는 OSS의 한국 담당 고문으로 활동했고 한인국방경위대인 ‘맹호군’ 편성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1945년이다. 당시 OSS는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한반도에 한국인 요원을 침투시켜 정보를 수집하고 일본군의 후방을 교란하는 비밀작전을 준비했다. 이른바 ‘냅코 프로젝트’다. 작전에 참여한 한인은 현재까지 확인된 인물만 19명이다. 유 박사도 이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암호명 A’로 불렸다.
냅코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은 미국에서 훈련을 받으며 한반도 침투작전을 준비했다. 작전은 1945년 8월 18일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8월 15일 항복하면서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준비했던 작전이 광복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유 박사의 독립운동이 오랫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생전에는 기업가와 교육자, 사회사업가로 더 많이 알려졌고 냅코 프로젝트 참여 사실은 사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세상에 알려졌다. 유한양행 역시 최근 창립 100주년을 맞아 ‘기업인 유일한’뿐 아니라 ‘독립운동가 유일한’을 조명하고 있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광복 이후에도 이어졌다. 유 박사는 기업의 이익을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만 보지 않았다. 유한양행은 그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전문경영인 제도를 정착시켰고 공익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유 박사는 생전에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고 교육과 장학사업에도 힘을 보탰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에서 유 박사는 사후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남겼으며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유한양행의 현재 지배구조에도 이런 철학이 남아 있다. 유한양행은 창업주의 경영철학을 설명하면서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며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라는 원칙을 강조한다. 유한재단과 유한학원 등 공익법인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는 현재의 지배구조 역시 이런 창업정신과 연결돼 있다.
2026년은 유한양행이 창립 100주년을 맞는 해다. 지난 100년 동안 유한양행은 국내 제약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고 현재는 글로벌 신약 개발에도 도전하고 있다. 폐암 치료제 렉라자를 비롯한 신약 성과를 앞세워 세계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유한양행의 100년 역사를 돌아볼 때 숫자로 나타나는 매출과 신약 성과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유 박사가 남긴 기업의 출발점에는 ‘국민 건강’이 있었고 그보다 더 넓은 삶의 목표에는 ‘나라와 사회’가 있었다. 독립운동가로서 조국의 광복을 준비했고 기업가로서는 국민이 필요로 하는 의약품을 공급했으며 교육과 사회사업을 통해 자신이 일군 부를 사회에 돌려줬다.
광복절은 단순히 일본의 패망과 국권 회복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독립을 위해 자신의 삶을 걸었던 사람들의 선택을 되새기는 날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한양행의 100년 역사는 제약기업의 성장사를 넘어 한 기업의 뿌리에 독립운동과 민족의식이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유 박사는 1995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기업가로서 쌓은 명성과 별개로 독립운동가로서의 공적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광복 81주년이자 유한양행 창립 100주년인 올해 광복절에 유한양행을 바라보는 가장 적절한 키워드는 ‘100년 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독립운동가가 세운 기업이라는 출발점에서 국민 건강과 사회적 책임을 향해 이어진 100년의 발자취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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