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현대차·포스코, 美에 8조원 '철강 전진기지'…50% 관세 넘어 모빌리티 공급망 완성

류청빛 기자 2026-09-06 18:17:13
루이지애나 HPLS 첫 삽…2029년 연 270만톤 전기로 자동차강판 생산 현대제철 50%·포스코 20%·현대차·기아 각 15%…직·간접 고용 5400명 기대 美 완성차 공급 추진…로봇·로켓·AI 데이터센터용 특수강까지 확장
현대제철-포스코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 기공식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현대자동차그룹과 포스코가 미국 루이지애나에 총 58억 달러(한화 약 8조원)을 투입하는 대형 전기로 제철소 건설에 들어갔다. 미국의 수입 철강 50% 관세 장벽을 현지 생산으로 넘고, 자동차강판부터 로봇·로켓 등 첨단산업용 특수강까지 공급하는 북미 생산거점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현대제철, 현대차·기아, 포스코는 4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도널드슨빌에서 ‘현대제철-포스코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HPLS)’ 기공식을 열었다. HPLS 부지는 약 223만평, 737만㎡ 규모다. 과거 사탕수수밭이었던 이곳에는 2029년까지 연산 270만톤 규모의 전기로 기반 일관제철소가 들어설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HPLS를 통해 북미에서 원료와 철강 생산부터 완성차 제조·판매까지 연결되는 현지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날 “이곳에서 생산되는 철강은 차세대 모빌리티를 만들어가는 현대차그룹은 물론 현지 다른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들을 지원하는 튼튼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다.
 
50% 철강관세 ‘현지 생산’으로 대응…美 특수강 수요 직접 겨냥

HPLS 투자의 가장 직접적인 배경 중 하나는 미국의 강화된 철강 무역장벽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철강 수입시장 중 하나지만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수입 철강에 50% 관세를 부과하고 반덤핑 조치도 강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생산한 철강을 미국에 들여오는 방식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현대차그룹과 현대제철은 아예 미국 현지에서 자동차용 특수강을 생산해 관세 영향을 낮추고 완성차 공급망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식을 택했다.

정 회장은 “미국은 매년 1000만 톤의 고부가 특수강을 수입하는데 현지에서 이를 커버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기아뿐 아니라 미국 내 다른 자동차 제조사에 철강을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HPLS 철강을 모든 차종에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며 “다른 완성차 업체들과도 실제 (철강 공급)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HPLS가 자리 잡는 도널드슨빌은 미국 남부 자동차 산업벨트와 연결하기에도 유리한 입지로 평가된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은 물론 GM의 텍사스, 폭스바겐의 테네시, 혼다의 앨라배마 생산거점과 접근성이 높다. 대형 철도망이 인접해 있는 데다 미시시피강을 통해 약 7만톤급 파나막스 선박의 접안이 가능해 원료 반입과 제품 출하에도 유리하다.

미국의 상대적으로 낮은 천연가스와 전력 비용도 전기로 생산의 원가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자동차강판 넘어 로봇·로켓까지…‘첨단소재 생산기지’로 확장

현대차그룹이 HPLS에 기대하는 역할은 자동차강판 생산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 회장은 “HPLS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부터 발전 분야까지 주요 산업의 기초를 지지하고 한미 양국의 미래 세대를 위한 새 기회를 창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향후 HPLS에서 생산하는 고부가 특수강의 사용처를 자동차뿐 아니라 로봇과 로켓 등 첨단산업으로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자동차 제조업을 넘어 로봇·AI·미래 모빌리티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는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철강 생산부터 첨단 모빌리티에 필요한 소재까지 현지 공급망 안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HPLS는 탄소저감형 자동차강판 생산거점 역할도 맡게 된다. 업계에서는 현지에서 생산한 특수강판을 현대차·기아 차량에 직접 적용할 경우 물류와 통상 리스크를 낮추는 동시에 소재 단계의 품질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제철과 포스코의 협업도 주목할 대목이다. HPLS의 지분구조는 현대제철이 50%로 가장 많고 포스코가 20%,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15%를 보유한다.

국내 철강시장에서 경쟁해 온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미국 대형 프로젝트에서는 공동 투자자로 손을 잡은 것이다. 두 회사는 앞서 수소환원제철을 비롯한 친환경 철강기술 분야에서도 장기적인 협력 가능성을 논의해왔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국내에서는 경쟁자의 입장이지만 글로벌로 보면 둘 다 한국의 기업”이라며 “(HPLS 구축은) 한국 기업이 세계로 나가 서로 협력하고 우리 기업의 위상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HPLS는 양사의 차세대 제철기술을 실제 생산현장에 적용하는 공동 실증무대 역할도 할 전망이다.
 
[사진=ChatGPT]
 
5400명 고용 효과…한미 제조업 협력의 새 상징

대규모 고용과 지역경제 효과도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HPLS 가동을 통해 직접 고용 약 1300명, 간접 고용 약 4100명 등 총 5400여명의 고용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지방정부 역시 한국 기업의 대형 제조업 투자에 기대를 나타냈다.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현대차그룹의 투자로 루이지애나 지역 사회는 일하고 배우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할 기회를 얻게 됐다”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도 이번 투자를 한미 산업협력의 대표 사례로 보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 제철소 건설이 아닌 한미 협력의 상징”이라며 “미 주정부와 연방 정부에 이 같은 모멘텀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지속적인 지원을 요청드린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GM과 도요타그룹, 포드에 이어 점유율 4위에 올라 있다. HPLS가 본격 가동되면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까지 미국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게 돼 북미 사업의 수직계열화 수준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에 한국 기업이 단순한 수출 축소가 아니라 현지 생산·투자 확대로 대응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58억 달러 규모의 HPLS가 계획대로 2029년 생산을 시작하면 현대차그룹의 미국 사업은 완성차 현지생산을 넘어 철강과 첨단소재까지 품는 구조로 확장된다. 동시에 현대제철과 포스코 역시 자동차강판을 넘어 미국의 로봇·우주·AI·에너지 산업을 겨냥한 고부가 특수강 시장에 직접 진입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