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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경제

규제 속도에서 갈린 신약 경쟁… C-바이오 질주, 한국은 어디에

한석진 기자 2026-03-05 08:02:00

중국 기술수출 9배 격차… 미·중은 심사 단축, 한국은 전략 전환 시험대

한국을 찾은 해외 제약바이오 바이어들이 상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중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장 속도가 가파르다. 지난해 중국 기업의 기술수출 규모는 1356억달러로 집계됐다. 한국은 150억달러 수준이다. 금액 기준으로 9배 차이다. 2020년만 해도 양국 격차는 크지 않았지만 이후 흐름이 달라졌다.
 

기술수출은 신약 후보물질을 다국적 제약사에 넘기고, 개발 단계에 따라 기술료를 받는 계약을 말한다.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외부에서 유망한 신약 씨앗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이 후보물질 목록을 업계에서는 ‘파이프라인’이라고 부른다. 앞으로 개발해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이 있는 신약들의 집합이라는 뜻이다. 파이프라인이 풍부할수록 기업의 미래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약진 배경에는 비용과 속도가 동시에 거론된다. 일부 글로벌 제약사들은 중국에서 신약 후보물질을 확보할 경우 개발 비용이 미국 대비 30~40% 수준에 그친다고 평가한다. 임상시험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여기에 규제 환경이 더해졌다.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은 신약을 사람에게 시험하기 전 제출해야 하는 임상시험 계획 승인 기간을 60일에서 30일로 줄였다. 쉽게 말해 신약 개발의 출발선에 서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한 것이다. 해외에서 진행된 임상시험 결과도 일정 범위 내에서 인정한다. 글로벌 제약사가 계약을 맺을 때 시간과 절차 불확실성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미국도 규제 운영 방식을 손보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을 이끄는 로버트 마카리 국장은 신약 허가 시 요구되는 대규모 최종 임상시험을 기존 두 차례에서 한 차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최종 임상시험은 수천 명 환자를 대상으로 약의 효과와 안전성을 마지막으로 검증하는 단계다. 개발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된다. 미국은 1960년대 이후 두 번 이상의 최종 시험을 요구해 왔으나 최근에는 시험 횟수보다 설계의 타당성과 데이터의 신뢰성을 더 중요하게 보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글로벌 제약 시장 구조와도 맞물린다. 2030년까지 특허가 만료되는 대형 의약품 매출은 약 3000억달러에 달한다. 기존 매출이 줄어들 것을 대비해 다국적 제약사들은 새로운 후보물질을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 개발 비용이 낮고 심사 속도가 빠른 국가가 계약에서 유리해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신속심사와 조건부 허가 제도를 운영한다. 자료를 준비되는 대로 제출해 심사를 병행하는 방식도 도입했다. 제도 틀만 보면 주요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글로벌 제약사가 한국을 신약의 첫 허가 시장으로 선택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개발이 진행되는 경우, 미국과 유럽이 우선 순위가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심사 인력 규모와 절차의 예측 가능성, 해외 임상 자료 활용 범위 등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은 안전성 기준이 엄격하다. 이는 의료 신뢰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그러나 주요국이 규제 체계를 산업 전략의 일부로 재정비하는 상황에서, 한국 역시 허가 제도를 산업 경쟁력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기술수출 격차는 연구개발 능력 차이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비용, 시간, 제도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규제를 완화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속도와 정밀성을 어떻게 균형 있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다.
 

글로벌 신약 경쟁은 이미 본격화됐다. 각국은 허가 체계를 산업 전략의 한 축으로 다루고 있다.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격차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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