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전기차에서 배터리는 차량의 심장과 같아 화재 위험과 직결되는 핵심 안전 부품이다. 그런데 완성차 기업이 이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숨긴 채 차량을 판매했다면 단순한 표시 누락으로 넘길 수 있을까. 공정거래위원회가 메르세데스 벤츠의 전기차 판매 행위를 제재한 사건이 단순한 영업 논란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공정위는 지난 10일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독일 본사에 과징금 112억3900만원을 부과하고 두 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조사 결과 벤츠는 전기차 EQE와 EQS 일부 모델에 중국 업체 파라시스(Farasis) 배터리 셀이 사용됐음에도 판매 지침에서는 이를 누락하고 CATL 배터리가 탑재된 것처럼 소비자를 오인시킨 것으로 판단됐다.
해당 판매 지침은 딜러 교육과 영업 과정에서 활용됐다. 현장에서는 CATL 배터리가 장착된 차량으로 설명하며 판매가 이뤄졌고 소비자 역시 이를 믿고 차량을 구매했다는 것이 공정위 설명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차량의 핵심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구매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전기차에서 배터리는 가격과 성능, 안전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부품으로, 어떤 배터리가 들어갔는지에 따라 차량 가치와 소비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더욱이 문제가 된 배터리는 EQE 국내 출시 직전인 2021년 중국에서 화재 위험으로 리콜된 이력이 있는 제품이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파라시스 배터리를 장착한 벤츠 전기차는 국내에서 약 3000대 판매됐고 판매 금액은 약 2810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정보 공개 시점 역시 논란을 키웠다. 벤츠는 2024년 8월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 사고가 발생한 이후 같은 달 13일 차종별 배터리 셀 제조사를 공개했다. 소비자가 궁금해하던 핵심 정보가 논란 이후에야 공개된 셈이다.
벤츠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오랫동안 프리미엄 이미지를 기반으로 판매를 확대해 온 기업이다. 높은 가격에도 소비자가 차량을 선택한 이유 역시 기술력과 브랜드 신뢰였다.
그러나 전기차 시대의 프리미엄은 단순히 브랜드 로고나 가격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배터리와 같은 핵심 부품 정보를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고 안전 문제에 얼마나 책임 있게 대응하느냐가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 부품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채 차량 판매가 이뤄졌다는 점은 벤츠가 스스로 신뢰의 기반을 흔든 사례로 볼 수 있다.
벤츠는 최근 한국 부품사와 협력 관계를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헝가리 공장에서 생산한 섀시 모듈을 벤츠 유럽 생산 차량에 공급하기로 하며 협력 범위를 북미에서 유럽까지 확대했다. 섀시 모듈은 조향·제동·현가 장치 등 차량 하부 핵심 부품을 통합한 구조로 차량 안전성과 주행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글로벌 완성차와 국내 부품사 간 협력 확대는 산업 측면에서 긍정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핵심 부품 정보를 소비자에게 공개하지 않는 기업이라면 이런 협력 역시 신뢰가 지속되기 어렵다. 완성차와 부품사의 관계는 단순한 납품 계약이 아니라 기술과 안전 책임을 함께 공유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벤츠코리아는 공정위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적 판단은 앞으로의 절차에서 가려질 문제다. 관건은 전기차 시대에 완성차 기업이 책임져야 할 정보 공개의 기준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점이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가치는 가격이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배터리와 같은 핵심 부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안전 검증과 사후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것만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벤츠가 놓친 것은 배터리 논란이 아니라 소비자 신뢰일지도 모른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무너지는 순간은 기술 경쟁에서 밀릴 때가 아니라 신뢰를 잃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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