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지금 우리가 마주한 AI이라는 파도는 그 높이와 깊이가 다르다. 과거의 기술이 인간의 손과 발을 확장하는 도구였다면 AI는 인간의 뇌를 대체하고 판단마저 대신하려 드는 까닭이다. 누군가 묻는다. AI 시대에 AI를 모르면 문맹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작금의 시대에 AI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신(新)문맹'이 맞다. 글자를 알되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처럼 코딩을 몰라서가 아니라 세상이 작동하는 새로운 규칙과 자본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질문의 절박함에 비해 답은 이미 대한민국 산업 현장에 참혹한 실적 계산서로 날아들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챗GPT의 등장에 "AI가 시를 쓴다"며 호들갑을 떨던 낭만적 시기는 끝났다. 이제 AI는 신기루나 장난감이 아니라 기업과 국가의 생존을 가르는 잔혹한 칼날이 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 지형을 보라. 우리는 거대한 착시 현상에 빠져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특수에 취해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라며 안도한다.
허나 반도체는 데이터를 실어 나르는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일 뿐이다. 정작 그 위를 질주하며 압도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자동차 즉 '소프트웨어와 AI 서비스 제국'의 패권은 여전히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틀어쥐고 있다. 과거 하드웨어의 성공 방정식에 갇혀 혁신을 외치는 시늉만 하고 있다.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이 나라의 뼈대를 이뤄온 굴뚝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데이터를 먹고 자란 AI가 공정의 불량률을 예측하고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을 실시간으로 우회하는 시스템을 갖춘 기업은 살아남는다. 반면 여전히 관리자의 '감'과 과거의 관행에 의존하는 기업은 도태되고 있다. 이 격차는 회계장부의 영업이익률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중이다. 이것은 일시적 불황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구조적 재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혼돈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가장 시급한 것은 '기본과 원칙' 그리고 '상식'이다. AI 시대의 문맹을 벗어난다는 것은 국민 모두가 파이썬 코드를 짜고 딥러닝 알고리즘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진정한 AI 문해력은 AI라는 도구의 한계와 가능성을 상식의 선에서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다. AI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주어진 데이터의 패턴을 확률적으로 조립해 가장 그럴싸한 답을 내놓는 거대한 통계 기계일 뿐이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의 진위를 판별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AI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철학적 사유와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AI는 그럴듯한 환각 거짓말을 양산하는 확성기로 전락할 뿐이다. 인간 사회의 윤리와 상식이 빈약한 리더의 손에 들린 AI만큼 위험한 무기는 없다.
참담한 것은 우리 사회 리더들의 수준이다. "AI를 도입해 혁신하라"는 영혼 없는 구호만 외치는 정치인과 관료 기업의 윗선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AI 문맹이다. 목적도 없이 남들이 하니 일단 도입하고 보자는 식의 'AI 포퓰리즘'이 국가 예산과 기업의 자본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는가.
AI의 뼈대가 되는 기초 수학과 과학 논리력을 키우는 교육은 등한시한 채 당장의 도구 사용법만 가르치겠다는 얄팍한 교육 정책은 백년대계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26년 대한민국 경제는 늙어가고 있다. 0.6명대라는 인구 절벽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을 메우고 잠재성장률의 추락을 막을 유일한 돌파구는 AI를 통한 생산성 혁명뿐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혁명은 기술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자들에 의해 완성되지 않는다. 도구를 지배할 줄 아는 냉철한 이성 '왜(Why)'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 그리고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존엄의 가치를 아는 자들만이 이 거대한 파도를 통제할 수 있다.
AI를 모르면 문맹이 되는 세상이 왔다. 그러나 상식과 원칙을 버린 채 AI만 맹신하는 자는 결국 도구의 노예가 될 뿐이다. 화려한 기술의 신기루에 가려진 2026년 대한민국의 서늘한 민낯을 직시해야 한다. 흔들릴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술의 시대일수록 결국 그 끝에서 답을 내리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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