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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경제

[기자수첩] 자궁경부암 백신? 이제는 '모두의 백신'

안서희 기자 2026-05-29 10:19:02

만 12세 남성 NIP 포함, 남녀 공용 방역 시대 개막

[생활경제부 안서희 기자]
[경제일보] ‘자궁경부암 백신’이라는 이름에 갇혀 있던 인유두종바이러스 예방 정책이 드디어 균형을 찾기 시작했다. 이달부터 국가예방접종사업(NIP)에 만 12세 남성 청소년이 포함되면서 지난 10여 년간 여성 중심으로 설계돼 온 방역 체계가 비로소 ‘전체’를 향해 움직이게 됐다.
 
그간 HPV 백신은 여성의 질병, 정확히는 자궁경부암 예방이라는 좁은 틀 안에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HPV는 성 접촉을 통해 남녀 모두에게 감염되며 남성에게도 항문암·구인두암·생식기 사마귀 등 다양한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감염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특정 성별이 아닌 ‘집단 전체’의 면역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남성 접종 확대는 이미 국제적으로 검증된 흐름이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일부 선진국은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HPV 백신을 지원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접종률을 80% 이상까지 끌어올리며 실질적인 암 예방 효과를 보고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이번 결정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방향 자체는 분명 옳다. ‘성별 이분법’ 방역에서 ‘보편적 건강권’으로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정책의 성패는 이제부터가 관건이다. 제도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현장의 준비 수준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큰 장벽은 인식의 문제다. 여전히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남학생에게 왜 자궁경부암 백신을 접종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는 백신의 명칭과 정보 전달 방식이 만들어낸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남성 역시 감염자이자 전파자이며 동시에 질환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보다 명확하게 전달될 필요가 있다.
 
백신 수급 문제 역시 변수로 꼽힌다. 기존 여성 대상 물량에 더해 남성 청소년까지 포함되면서 단기간 수요 증가가 불가피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예약 지연이나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정책 확대가 곧바로 접종 불편으로 이어질 경우 초기 신뢰 형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접종 접근성 또한 간과하기 어려운 과제다. 학업 일정에 쫓기는 청소년들이 권장 시기에 맞춰 접종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학교, 보건소, 의료기관 간의 유기적인 연계가 필요하다. 단순 안내를 넘어 실제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실행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결국 백신은 과학의 영역이지만 접종은 사회적 선택의 문제에 가깝다. 정책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도적 확대를 넘어 인식의 전환이 동반돼야 한다. 남성의 HPV 백신 접종이 더 이상 낯선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예방이자 기본적인 건강권으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이 정책은 비로소 완성된다.
 
10년 만에 열린 변화의 문이 단순한 ‘대상 확대’에 그칠지 아니면 진정한 공중보건의 전환점이 될지는 이제 우리 사회의 몫이다. HPV라는 긴 터널의 끝은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곳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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