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중국 경제의 서로 다른 얼굴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상하이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사겠다는 주문과 투자 약속이 쏟아졌다. 중앙은행은 경기 부양 요구에도 대출 기준금리를 14개월째 그대로 뒀다. 관객이 줄어든 극장들은 영화 대신 월드컵을 걸어 빈 좌석을 채웠다.
지난 17일부터 나흘간 상하이에서 열린 ‘2026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는 102개 국가와 국제기구 대표가 참석했다. 국내외 전문가 1568명이 모였고 행사 기간 열린 포럼은 160개에 육박했다.
전시장에는 AI 반도체와 휴머노이드 로봇, AI가 탑재된 휴대전화 등 4486개 제품과 기술이 나왔다. 이 가운데 351개 제품이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지난해보다 전시업체와 전시장 면적이 각각 3분의 1 이상 늘었고 현장을 찾은 관람객은 40만명을 넘었다.
이번 대회에서 눈에 띈 것은 관람객 수보다 돈의 흐름이다. 세계 각국에서 온 177개 구매단이 212건의 구매 수요를 내놨다. 행사 주최 측이 집계한 구매 의향 금액은 203억6000만위안으로 지난해보다 25% 늘었다. 우리 돈으로 약 4조원에 이르는 규모다.
구매 의향은 계약이 끝나 실제 대금이 오간 금액은 아니다. 제품을 검토한 기업이나 기관이 구매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단계다. 다만 AI가 기술 시연에 머물지 않고 기업의 실제 투자 대상이 되고 있다는 흐름은 읽을 수 있다.
상하이에서는 AI 기반시설과 로봇, 기업용 AI 서비스 등을 포함한 32개 사업도 계약서에 이름을 올렸다. 총투자액은 409억위안을 넘었다. AI 관련 창업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금융회사들이 제시한 대출 한도는 1조1800억위안에 달했다. 이 금액 역시 이미 집행된 대출이 아니라 향후 심사를 거쳐 공급할 수 있다는 의향성 한도다.
올해 행사에서는 화려한 대형 언어모델보다 AI를 실제로 어디에 쓸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다. 자동차 공장에서 부품을 나르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회사의 구매·재고 업무를 맡는 AI 프로그램,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의료 AI가 전시장을 채웠다.
중국 AI 산업의 관심이 ‘누가 더 큰 모델을 만드느냐’에서 ‘누가 먼저 돈을 버는 제품으로 만드느냐’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AI가 널리 쓰일수록 사고 위험도 커진다. 이번 대회에서는 사용자의 지시를 받아 스스로 여러 일을 처리하는 ‘AI 에이전트’가 통제에서 벗어날 경우에 대비한 보고서와 국제 협력 방안도 발표됐다. 기술 개발과 함께 안전 규칙을 선점하려는 경쟁도 시작됐다.
AI 전시장에 돈이 몰렸지만 중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더 내리지 않았다.
중국 인민은행은 20일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연 3.0%, 5년 만기 이상 LPR를 연 3.5%로 유지했다. 두 금리는 지난해 5월 0.1%포인트씩 내려간 뒤 14개월 연속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
LPR는 중국 은행들이 기업과 가계에 돈을 빌려줄 때 기준으로 삼는 금리다. 1년 만기 금리는 기업 대출과 신용대출에 주로 영향을 주고, 5년 만기 이상 금리는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밀접하게 움직인다.
부동산 침체와 내수 부진을 고려하면 금리를 내려 돈이 돌게 해야 한다는 요구가 적지 않다. 중국이 선뜻 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은행들은 부동산 부실과 대출금리 하락으로 이자 수익이 줄어든 상태다. 예금금리는 충분히 떨어지지 않았는데 대출금리만 더 내리면 은행의 수익성이 한층 나빠진다. 미국과 중국의 금리 차가 커지면 위안화 가치 하락과 자금 유출 압력도 높아질 수 있다.
중국 당국이 경기 부양과 은행 건전성, 환율 방어 사이에서 금리를 붙들고 있는 이유다. 시장에서는 수출 둔화나 경기 하강이 두드러질 경우 하반기에 지급준비율이나 정책금리를 내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중국 극장가에서는 전혀 다른 실험이 벌어졌다.
지난 20일 새벽 열린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결승전은 중국 전역의 극장에서도 생중계됐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던 좌석에 앉아 대형 화면과 입체 음향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중국에서 월드컵 전 경기가 공식 허가를 받아 전국 극장망을 통해 대규모로 생중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중앙방송총국이 중계권을 제공하고 중국영화산업그룹이 극장 송출과 예매를 맡았다.
월드컵 기간 경기를 생중계한 중국 극장은 1200곳을 넘었다. 31개 성·시의 255개 도시에서 2만8000회 이상 상영됐다. 결승전 입장권은 50∼80위안으로 일반 영화표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베이징의 일부 극장은 예매 단계에서 좌석이 모두 팔렸다.
극장들이 축구 중계에 나선 데는 관객 감소에 대한 위기감이 깔려 있다. 인기 영화가 걸리는 연휴와 주말에는 관객이 몰리지만 평일 오전과 심야에는 빈 상영관이 많다.
북중미와 중국의 시차로 이번 월드컵 주요 경기는 중국 시간으로 오전이나 심야에 열렸다. 평소라면 비어 있을 시간대에 축구팬을 불러들일 수 있었다. 월드컵 중계가 영화 상영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던 시간대를 채운 것이다.
일부 극장은 응원용품과 한정 음료를 판매하고 같은 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상영관 전체를 빌려줬다. 경기표를 인근 음식점과 상점의 할인권으로 활용하는 행사도 열었다. 극장이 영화를 보는 장소에서 스포츠와 공연, 식음료를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 정부도 지난 6월 극장이 영화 상영에만 매달리지 말고 공연과 스포츠, 오락을 결합한 문화공간으로 사업을 넓힐 수 있도록 관련 지침을 내놨다.
상하이 AI대회와 금리 동결, 월드컵 극장 중계는 서로 다른 뉴스다. 세 장면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중국의 다급함이다.
돈과 인재는 AI로 몰리고 있지만 부동산과 내수 경기는 여전히 금리를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관객이 줄어든 극장은 영화가 아닌 축구에서 새 수입원을 찾았다. 기술 투자만으로는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금리 인하만으로도 소비를 되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 경제가 곳곳에서 새로운 출구를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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