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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물가 신호가 바뀌었다…한은, 금리 인상 준비할 때다

송정훈 기자 2026-05-05 09:00:00
4월 2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5.24(2020년 수준 100)로, 전월(123.28)보다 1.6% 올랐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주유소.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성장이냐, 물가안정이냐.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마다 마주하는 오래된 질문이다. 모든 국면에서 두 가치의 무게가 같은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에서는 답이 비교적 분명하다. 성장의 불씨를 살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시급한 것은 물가 기대를 다시 붙잡는 일이다.

한국은행은 2019년 이후 물가안정목표를 소비자물가 상승률 기준 2%로 설정하고 있으며 통화정책의 최우선 목표 역시 물가 안정에 두고 있다. 물가가 흔들리면 경제주체의 기대가 흔들리고 기대가 흔들리면 임금·가격·환율·자산시장 전반으로 불안이 번진다. 금리 정책이 늦어질수록 나중에 치러야 할 비용은 더 커진다. 

이런 점에서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의 최근 발언은 가볍게 넘길 신호가 아니다. 유 부총재는 지난3일(현지시간) 아시아개발은행 연차총회 참석 중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인상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취지로 말했고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신호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덧붙였다. 현직 금통위원이 공개적으로 인상 가능성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시장 메시지가 아니라 통화정책 기류 변화의 예고편에 가깝다. 

물가 환경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4월 10일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하면서도 중동전쟁으로 물가 상방 압력과 성장 하방 압력이 동시에 커졌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이후 흐름이다. 중동 불안이 에너지 가격과 공급망에 부담을 주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도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72.9원에 개장했다. 이 정도의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통해 국내 물가를 자극할 수밖에 없다. 

반면 성장은 예상보다 버티고 있다. 특히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회복세가 경기 하방을 상당 부분 떠받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4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4월 반도체 수출은 319억 달러로 전년 대비 173% 증가했다. 반도체 호황이 모든 산업의 부진을 가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경제가 금리 인상을 전혀 감내할 수 없는 침체 국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지금의 한국 경제는 ‘성장은 버티고 물가는 불안한’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기존의 동결 기조에만 머문다면 정책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통화정책은 현재의 숫자만 보고 움직이는 기술이 아니다. 기대를 관리하는 일이다. 물가가 실제로 더 오른 뒤 금리를 올리는 것은 이미 늦은 대응이다. 중앙은행의 메시지는 늘 반 발 앞서 있어야 한다.

오는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공개될 금리 전망 분포, 이른바 점도표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2월 점도표는 대체로 동결 분위기 속에서 일부 인하 가능성까지 열어둔 흐름이었다. 그러나 최근 물가와 환율, 중동 리스크를 감안하면 5월 점도표는 금리 경로를 상향 조정하는 쪽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점 하나의 이동은 단순한 숫자 변화가 아니다. 시장에는 동결 유지에서 인상 준비로 정책 중심축이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가 된다. 

물론 금리 인상은 고통을 수반한다. 가계의 이자 부담은 커지고 취약 차주의 상환 능력은 시험대에 오른다. 기업 투자에도 부담이 된다. 그러나 물가 불안을 방치했을 때의 비용은 더 광범위하다. 실질소득이 줄고, 서민 생활비 부담이 커지며, 자산시장에는 왜곡된 기대가 쌓인다. 물가를 놓친 중앙은행은 나중에 더 높은 금리와 더 큰 경기 충격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당장 과격한 인상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준비된 전환이다. 한은은 5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명확히 열어두고 물가·환율·국제유가 흐름이 악화될 경우 지체 없이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시장에 알려야 한다. 그래야 기대인플레이션을 묶고, 원화 약세 압력도 완화하며 통화정책의 신뢰를 지킬 수 있다.

중앙은행의 침묵은 때로 신중함이지만 때로는 실기다. 지금은 후자에 더 가까운 국면으로 가고 있다. 성장만을 이유로 물가 신호를 외면하기에는 대외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한국은행이 지켜야 할 첫 번째 원칙은 분명하다. 물가안정이다.

금리 인상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이제는 준비해야 할 정책 선택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