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릴리, 5조원 들여 백신 3社 인수…GC녹십자 '큐레보' 글로벌 도약 기회

안서희 기자 2026-05-27 09:47:43
GLP-1로 쌓은 실탄, 감염병 예방 시장으로 방향 전환 대상포진 백신 '게임체인저' 기대…부작용 절반 감소
[사진=AP·연합뉴스]

[경제일보]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가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해 백신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비만·당뇨 치료제 ‘GLP-1’ 계열 의약품으로 확보한 막대한 현금을 바탕으로, 치료 중심 사업 구조를 ‘예방 의학’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릴리는 백신 개발사 큐레보(Curevo Inc.), 림마테크 바이오로직스(LimmaTech Biologics AG), 백신 컴퍼니(Vaccine Company, Inc.) 등 3개사를 총 38억3000만 달러(약 5조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이번 거래에서 주목받는 기업은 큐레보다. 큐레보는 국내 제약사 GC녹십자가 글로벌 백신 시장 진출을 목표로 2017년 미국에 설립한 자회사다. 릴리는 큐레보 인수에 최대 15억 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며 이는 전체 거래 금액 중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큐레보의 핵심 파이프라인은 성인 대상포진 예방 백신 ‘아메조스바테인’이다. 현재 글로벌 대상포진 백신 시장은 GSK의 ‘싱그릭스’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싱그릭스는 2025년 기준 약 7조원 규모의 매출을 기록하며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백신은 강한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대신 발열, 피로, 주사 부위 통증 등 부작용이 커 접종 기피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큐레보의 후보물질은 임상 2상에서 기존 백신과 유사한 면역 효과를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부작용을 절반 이상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림마테크 인수 역시 전략적 의미가 크다. 이 회사는 황색포도상구균, 임균, 클라미디아 등 항생제 내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세균 감염을 겨냥한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수술 후 감염의 주요 원인균을 표적으로 한 백신 후보물질은 현재 임상 1상 단계에 진입해 있다. 항생제 효과가 점차 떨어지는 상황에서 백신을 통한 예방 전략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백신 컴퍼니는 생체 내 나노입자(IVN) 기술을 활용한 차세대 플랫폼 기업이다. 이 기술은 체내에서 항원을 직접 발현시켜 강력하고 지속적인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기존 백신 대비 생산 효율성과 면역 지속성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를 표적으로 한 백신 개발이 진행 중이며 EBV가 다발성 경화증과 일부 암 발생과 연관된다는 연구 결과가 늘어나면서 시장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릴리의 이번 행보는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 제약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반영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릴리는 “감염병은 단기 질환을 넘어 장기적인 신경질환과 암까지 유발할 수 있다”며 “질병 발생 이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예방하는 전략으로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인수는 조직 개편과도 맞물려 있다. 릴리는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 바이오의약품평가센터(CBER) 센터장을 지낸 피터 마크스 박사를 감염병 연구 책임자로 영입하며 백신 사업 확대 의지를 분명히 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GC녹십자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GC녹십자는 지난해 큐레보와 해당 백신의 상업화 이후 제품 공급을 위한 위탁생산(CMO)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릴리 인수 이후에도 이 계약이 유지될지 혹은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재편이 이뤄질지가 주요 변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