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기자수첩] 한미, 릴리와 1.9조 기술수출 계약…이제는 '완주'의 문제다

안서희 기자 2026-06-11 12:01:05
기술수출 넘어선 검증…글로벌 신약으로 이어질 수 있나
[생활경제부 안서희 기자]

[경제일보] “또 기술수출이다.”
 
한미약품이 미국 빅파마 일라이 릴리와 손을 잡았다는 소식에 시장이 먼저 반응했다. 숫자는 화려하다. 총 12억6000만 달러, 우리 돈 약 1조9000억원 규모다. 초기 계약금도 수천만 달러 수준으로 적지 않다.
 
이번 계약의 주인공은 ‘소네페글루타이드’다. 장 점막을 재생하는 GLP-2 기반 바이오신약 후보물질로 한미약품의 핵심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가 적용됐다. 약효 지속 시간을 늘려 투여 편의성을 개선한 점이 경쟁력으로 꼽힌다.
 
표면만 보면 ‘성공 서사’다. 글로벌 빅파마가 선택했고 대규모 계약을 따냈으며 플랫폼 기술 경쟁력도 다시 인정받았다. 증권가가 기업가치 재평가를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한미약품은 과거 사노피, 얀센 등과의 대형 기술수출 이후 일부 계약이 반환되며 시장 신뢰에 균열을 겪은 바 있다. ‘기술수출 강자’라는 타이틀 뒤에 ‘완주하지 못한 경험’이 함께 따라붙는 이유다.
 
이번 계약 역시 구조를 뜯어보면 냉정하다.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 권리를 이전하고 임상·허가·판매 단계별로 마일스톤을 받는 방식이다. 총액 대부분은 조건부 금액이다. 결국 임상 성공과 상업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실현되지 않는다.
 
핵심은 분명하다. ‘얼마를 계약했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다. 신약 개발은 계약 체결이 아니라 임상 데이터, 허가, 그리고 실제 처방으로 완성된다. 특히 소네페글루타이드가 겨냥하는 희귀질환 영역은 미충족 수요가 크지만 환자 규모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상업적 확장성 역시 변수다.
 
그럼에도 이번 계약이 갖는 의미는 가볍지 않다. 상대가 일라이 릴리라는 점 때문이다. 릴리는 GLP 계열 치료제에서 이미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이다. 이런 회사가 한미약품의 플랫폼과 후보물질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기술 검증을 일정 부분 통과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또 하나의 변화는 ‘역할’이다. 과거와 달리 글로벌 임상과 상업화의 중심축이 릴리로 이동하면서 개발 리스크는 분산되고 성공 시 파급력은 커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한미약품 입장에서는 선택과 집중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질문은 단순해진다.
“이 계약이 끝까지 갈 수 있는가.”
 
좋은 기술은 많다. 하지만 끝까지 개발해 시장에 안착시키는 사례는 많지 않다.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진짜 성과는 계약서가 아니라 허가증과 매출로 증명된다.
 
한미약품은 다시 시험대 위에 섰다.
이번에는 기대가 아니라 결과로 답해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