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피해자 증인신문 후 진술 배척한 1심…"2심이 함부로 판단 못 뒤집는다"

권석림 기자 2026-06-22 09:53:03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사진=연합뉴스]
대학 동창에게 사모펀드 투자를 빙자해 1억33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1심 무죄 판단을 2심이 추가 증거조사 없이 뒤집은 것은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

A 씨는 2016년 대학 동창인 피해자 B 씨에게 연락해 원금 보장과 고정 이율 수익금이 보장된 사모펀드 상품에 가입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A 씨는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더라도 개인 채무 변제 및 생활비에 사용할 생각이었을 뿐, 사모펀드 상품에 가입해 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 당시 A 씨는 개인 채무도 2억 원가량 있었다. A 씨는 그럼에도 피해자를 기만해 총 8회에 걸쳐 1억3300만 원을 송금받았다.

쟁점은 A 씨가 피해자를 기만한 사실이 증명됐는지 여부였다.

1심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를 기만한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검사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반면 2심은 유죄를 선고하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해자 진술, 카카오톡 대화 내용, 거래 내역을 토대로 A 씨가 B 씨를 기만해 자금을 속여 뺏었음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A 씨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

대법원의 확립된 법리에 따르면 1심이 증인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항소심이 이를 뒤집으려면 충분하고도 이해할 만한 현저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증인신문에서 진술 태도를 직접 관찰한 1심 판단을 항소심이 함부로 뒤집어선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투자금 1억3000만 원을 4년간 8회에 걸쳐 송금하면서도 사모펀드 가입증명서나 계약서를 받은 사실이 전혀 없고 요청하지도 않았으며, 투자금도 사모펀드가 아닌 김 씨 명의 계좌로 송금했다고 지적했다.

또 피해자는 이 사건 투자 이전에 피해자 모친 이름으로 투자계약서를 받고 직접 투자한 회사의 계좌로 투자금을 송금한 경험도 있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이 든다고 봤다. 이를 토대로 1심의 증거가치 판단이 명백히 잘못됐다고 볼 사정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이 1심 판단에 의문이 들더라도 곧바로 이를 뒤집을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증인으로 다시 신문하는 등 추가적인 증거조사 절차를 거친 다음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원심은 추가적인 증거조사 없이 공판기일을 1회 만에 종결한 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관한 1심 판단을 뒤집고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는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심리주의 원칙, 항소심의 심리 및 재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