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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국 무역법 301조 관세, 대미 투자로 면죄부 살 수는 없다

경제일보 2026-07-23 12:01:23
[사진=AI 생성 이미지]

[경제일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의 무역법 301조 추가 관세 결정을 앞두고 22일(현지시간) 워싱턴을 찾았다. 김 장관은 미국 상무·에너지부와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통상 현안과 대미 전략투자, 조선·에너지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우리 기업의 관세 부담을 줄이고 한미 교역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것은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관세를 낮추기 위해 대미 투자 약속을 계속 확대하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관세를 낮추기 위해 대미 투자를 늘릴 수는 있다. 그렇다고 수익성과 국내 산업 효과가 불분명한 사업에 국민 자본을 투입해서는 안 된다. 관세 감면을 대가로 부실 투자 위험을 떠안는다면 통상 협상이 아니라 손해 보는 거래를 한 것이다.
 
미국은 강제노동 문제와 관련해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교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진행하고 추가 관세를 검토해 왔다. 최종 세율과 대상 품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자동차·철강·배터리·기계 등 대미 수출 업종에는 큰 부담이다. 정부는 협상에 최선을 다하되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에 대비한 업종별 피해와 대응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대규모 대미 전략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에너지, 제약, 조선 등 미국 전략산업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갈 예정이다. 정부는 상업성이 있는 사업을 선별하겠다고 하지만 안보와 공급망을 이유로 경제성이 낮은 사업까지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대미 투자 규모가 크다고 국익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세우면 현지 생산과 고용은 늘어난다. 반면 국내 설비투자와 협력업체 발주가 줄면 한국의 산업 기반과 일자리는 약해질 수 있다. 대기업 생산시설 하나가 해외로 이동하면 수많은 소재·부품·장비 업체와 지역경제도 영향을 받는다.
 
정부는 대미 투자 사업별 예상 수익과 회수 기간, 미국 측 분담 비율, 정부 보증과 정책금융 규모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사업이 실패했을 때 누가 손실을 부담하는지도 분명해야 한다. ‘전략적 필요’나 ‘동맹 강화’라는 추상적인 명분만으로 수십억달러의 투자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투자 심사도 정부 부처의 재량에만 맡겨서는 곤란하다. 산업·금융·통상 전문가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심사체계를 마련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정부 보증이나 정책금융이 투입되는 사업은 국회와 국민에게 보고해야 한다. 사후 수익률과 국내 고용 효과도 정기적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다.
 
대미 투자에는 국내 산업을 지키는 조건을 붙여야 한다. 미국 현지 생산이 불가피하더라도 핵심 연구개발과 설계, 소재·부품 생산은 국내에 남겨야 한다. 해외 공장과 국내 협력업체 간 장기 공급계약을 유도하고, 대기업이 국내 인력 양성과 중소 협력업체의 기술 전환에도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미국에도 기존 합의의 예측 가능성과 상호성을 요구해야 한다. 한국이 대규모 투자와 조선·에너지 협력을 약속한 뒤에도 새로운 조사와 관세가 반복된다면 안정적인 교역 질서를 기대하기 어렵다. 동맹은 한쪽이 관세를 위협하고 다른 쪽이 투자를 내놓는 관계가 아니다.
 
<손자병법>에는 “먼저 이길 수 있는 형세를 갖춘 뒤 싸움을 구한다”는 뜻의 ‘선승이후구전(先勝而後求戰)’이 나온다. 통상 협상도 마찬가지다. 관세 결정이 임박한 뒤 투자 약속을 서둘러 내놓을 것이 아니라 업종별 피해와 대응 수단, 투자 원칙과 손실 방지 장치를 먼저 갖춰야 한다.
 
통상 협상의 목적은 관세율을 몇 퍼센트 낮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내 기업의 경쟁력과 협력업체, 일자리를 지키고 국민 자본을 안전하게 운용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정부는 대미 투자를 관세 면제권을 사기 위한 백지수표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관세는 협상할 수 있지만 국민의 세금과 산업 기반은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