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분위기 속에서 AI는 어느새 '함께 일할 기술'이 아니라 '싸워야 할 경쟁자'가 돼 버렸다. 하지만 정말 그래야 할까. 산업혁명 당시에도 증기기관은 노동자의 적이었다. 정보화 시대에는 컴퓨터가 사무직을 없앨 것이라는 전망이 넘쳐났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는 기존 산업이 모두 무너질 것이라는 공포도 있었다. 변화는 늘 불안을 동반했지만 역사는 기술이 일자리를 단순히 없애기보다 산업의 모습을 바꾸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왔음을 보여준다.
AI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다. 기술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준비 수준이다. 최근 기업들의 AI 도입 목적을 보면 대부분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맞춰져 있다. 반복 업무를 줄이고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당연한 선택이다. 그러나 생산성이 높아진 만큼 사람에게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역할을 맡길 준비도 함께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 역시 비슷하다. AI 육성을 말하고, 데이터센터를 짓고, 반도체와 GPU 확보 경쟁에 뛰어든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AI 산업의 성패는 인프라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을 다룰 사람을 어떻게 키우고 기존 산업 종사자들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어떤 교육과 전환 기회를 제공할 것인지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
기업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AI를 사람을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능력을 키우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반복적인 보고서 작성은 AI가 맡더라도 고객을 설득하고,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고, 시장의 변화를 읽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에 더 많은 시간과 역량을 투자할 수 있도록 조직을 바꾸는 것이 진짜 디지털 전환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AI는 반도체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고, 전력이 필요하며,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 콘텐츠와 서비스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대학과 연구기관, 지역 산업까지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될 때 AI 경쟁력은 비로소 완성된다. 어느 한쪽만 성장해서는 오래갈 수 없다.
기술의 속도를 늦추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더 빠르게 준비하자는 것이다. 기술이 앞서가더라도 사람이 뒤처지지 않도록 AI가 만들어내는 성과가 특정 기업이나 일부 계층에만 머물지 않도록 사회적 설계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제조업, 통신 인프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제 그 기반 위에 AI 생태계를 어떻게 쌓아 올릴 것인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빨리 도입했느냐가 아니라 AI와 사람이 얼마나 잘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었느냐다.
AI는 사람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 아니다. 사람의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 등장한 도구다. 기술은 이미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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