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데스크 칼럼] 대법관 인선 '밀실 합의', 사법독립 위해서라도 끝내야

한석진 기자 2026-08-24 09:19:49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대법관을 뽑는 절차는 법에 정해져 있다. 후보를 천거받아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심사하고, 대법원장이 그 가운데 한 사람을 대통령에게 제청한다. 국회가 동의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런데 법에는 없는 절차 하나가 마지막 관문처럼 작동해 왔다. 대법원과 대통령실이 최종 후보를 놓고 사전에 의견을 맞추는 물밑 협의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다음 달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면 제청했다. 그동안 대법원장이 대통령실과 후보를 조율한 뒤 대통령을 만나 제청해 온 관행과 달랐다. 청와대는 “협의를 건너뛴 유례없는 일방 통보”라며 반발했고, 손 후보 제청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이번 일을 조희대 대법원장과 이재명 대통령 가운데 누가 맞느냐는 싸움으로 보면 본질을 놓친다.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을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제청권과 동의권, 임명권을 세 기관에 나눠 놓은 것이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후보를 미리 합의해야 한다는 절차는 헌법에도 법률에도 없다.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관행이 헌법상 절차가 될 수는 없다.
 

법에 없는 관행이 실제 인선에서는 법정 절차만큼이나 강하게 작동해 왔다. 양측이 뜻을 맞추면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합의가 깨지면 지금처럼 제청과 임명 절차가 멈춘다. 누가 언제까지 양보해야 하는지,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를 돌려보낼 수 있는지, 대법원장이 다시 후보를 골라야 하는지 정해진 기준도 없다. 관행은 합의가 될 때 편리하다. 갈등이 생겼을 때 작동하는 것이 제도다.
 

앞단의 절차는 오히려 꽤 공개돼 있다. 후보자를 천거받고 심사 대상자의 학력과 주요 경력, 재산 관계를 공개한다. 국민 의견도 받는다. 후보추천위가 검증 자료를 살펴 후보를 압축한다. 대법원도 이런 절차를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해 왔다.
 

그렇게 공개 검증을 거친 후보들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면 문이 닫힌다. 대통령실이 누구를 반대했는지, 대법원은 왜 특정 후보를 고집했는지, 어떤 기준에서 이견이 생겼는지는 국민이 알기 어렵다. 앞에서는 후보자의 재산까지 내놓고 검증받으면서 정작 마지막 한 사람을 고를 때만 물밑 협의에 맡겨 온 셈이다.
 

그 결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자리는 다섯 달 넘게 비었다. 후보추천위는 지난 1월 후보 4명을 추천했다. 그런데도 대법원과 대통령실의 의견 조율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18일 조 대법원장이 손 후보를 서면 제청하면서 갈등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법에 없는 협의가 풀리지 않으면서 헌법기관 구성원의 공석이 길어진 것이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제청이 이뤄지기 전 기존 후보들을 상대로 후보추천 절차를 다시 진행하는 방안까지 타진했다. 대통령실과 대법원의 협의가 풀리지 않자 이미 끝난 추천 절차를 처음부터 되돌리는 방안이 검토된 것이다. 일부 후보가 반대하면서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법에 따라 후보추천위가 후보를 골랐는데 물밑 협의가 막혔다는 이유로 법정 절차를 다시 돌리려 했다면 본말이 뒤집힌다. 후보추천위보다 대통령실과 대법원의 비공식 합의가 더 높은 단계에 놓였다는 얘기가 된다. 법에 정해진 절차가 관행에 밀려서는 안 된다.
 

청와대도 대법원도 이 관행에 기대 왔다. 청와대가 오랜 관행을 근거로 사전 협의를 당연한 권한처럼 요구하면 대통령의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제청 단계까지 뻗게 된다. 대법원도 대통령실과 협의를 이어오다가 합의가 깨진 뒤에야 독립된 제청권을 내세운다면 그동안 왜 법에 없는 절차에 기대 왔는지 설명해야 한다. 지금의 충돌은 바로 그 모순에서 시작됐다.
 

사법독립은 대통령의 개입을 막는 동시에 대법원장의 권한도 절차 안에 묶어 두는 일이다. 대법관은 대통령의 사람도, 대법원장의 사람도 아니다. 법률과 헌법을 최종적으로 해석하고 국민의 권리를 판단하는 자리다. 그런 사람을 뽑는 절차라면 누가 어떤 권한을 행사하는지부터 분명해야 한다.
 

사전 협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법에 넣으면 된다. 누가 의견을 낼 수 있는지, 어느 범위까지 협의할 수 있는지, 언제까지 제청과 임명 절차를 끝내야 하는지 정하면 된다. 헌법상 제청권과 임명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절차라면 없애야 한다. 지금처럼 법 밖에 둔 채 합의가 될 때는 관행이라고 따르고, 틀어지면 서로 헌법상 권한을 들고나오는 방식은 더 두고 볼 일이 아니다.
 

앞으로 대법관 인선은 더 잦아진다. 대법관 정원이 단계적으로 26명까지 늘어나면서 현 대통령 임기 동안 새로 임명되는 대법관 수도 크게 늘어난다. 현행 일정대로라면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중 최대 22명의 대법관 임명에 관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법원의 구성이 크게 바뀌는 시기에 최종 인선 방식을 비공식 합의에 계속 맡겨 둘 수는 없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바뀔 때마다 인선 방식까지 달라져서는 안 된다. 두 기관장이 뜻을 맞출 때만 굴러가는 절차라면 제도라고 하기 어렵다. 사법독립을 사람의 선의나 두 사람의 관계에 맡길 수는 없다.
 

헌법은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주고 국회에 동의권을,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줬다. 각자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라는 뜻이다. 헌법이 나눠 놓은 권한을 밀실에서 다시 합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