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비가 오는 날에도 골프장에 직접 가서 취소하지 않으면 2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우천 시 골프장 예약 취소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폭우나 낙뢰 등으로 라운드가 어려운 날에도 현장에 가야만 취소할 수 있는지,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액의 위약금을 물릴 수 있는지를 두고 소비자들의 불만이 나온다.
31일 관련 내용을 종합하면 최근 한 골프장 예약 취소 과정에서 비가 와도 현장에서 직접 취소하지 않으면 2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이 알려졌다. 골프장들은 통상 당일 취소나 예약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른바 ‘노쇼’에 위약금이나 일정 기간 예약 제한 등의 불이익을 두고 있다.
예약 취소에 따른 위약금 자체는 계약상 인정될 수 있다. 예약자가 일방적으로 취소하면 골프장은 해당 시간대에 다른 이용객을 받지 못해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골프장이용 표준약관’도 취소 시점에 따라 일정한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표준약관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당일 예약을 취소하거나 아무런 통보 없이 골프장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팀별 골프코스 이용요금의 30%를 부담한다. 주말·공휴일과 평일에는 취소 시점에 따라 10~20%의 위약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폭우나 폭설, 안개 등으로 골프장을 이용하기 어려울 때는 별도의 규정이 적용된다.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골프장이 휴장하면 예약금을 반환하고, 라운드 도중 기상 악화로 경기를 중단하면 이용한 홀을 기준으로 요금을 정산한다.
라운드를 시작하기 전에는 상황이 복잡해진다. 현행 표준약관에는 시간당 강수량이나 호우·낙뢰특보 등을 기준으로 이용객이 위약금 없이 예약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구체적인 수치가 없다.
골프장이 정상 영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이용객이 폭우나 낙뢰 위험을 이유로 라운드를 포기하더라도 당일 취소나 미내장으로 처리될 수 있다. 골프장은 경기가 가능하다고 보고 이용객은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어느 쪽 판단을 따를지 명확한 기준을 찾기 어렵다.
단순히 비가 내린다는 이유만으로 이용객에게 당일 취소를 자유롭게 허용하기도 어렵다. 반면 기상 상황이 급격히 나빠진 경우까지 일반적인 당일 취소와 똑같이 처리하는 것이 적정한지는 별도로 살펴야 한다.
골프장 예약 취소와 환급을 둘러싼 소비자 불만은 꾸준히 이어졌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 8월까지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골프장 관련 소비자 불만은 2170건이었다.
이 가운데 예약 취소 때 과도한 위약금을 부과하거나 사용하지 않은 요금을 환급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736건으로 33.9%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기상 악화를 이유로 예약을 취소하는 과정에서 골프장과 이용객 사이에 다툼이 생긴 사례도 있었다.
공정위 표준약관보다 이용객에게 불리한 자체 규정을 적용한 골프장도 확인됐다. 한국소비자원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대중형 골프장 355곳을 조사한 결과 111곳이 예약 취소 위약금이나 경기 중단 때의 환급 기준에서 표준약관과 다른 규정을 두고 있었다.
이 가운데 59곳은 개인 사정으로 예약을 취소했을 때 표준약관보다 많은 위약금을 부과했다. 폭우나 안개 등으로 라운드를 중단한 경우 표준약관보다 환급액을 적게 정한 골프장도 43곳이었다. 해당 골프장들은 이후 개선 권고에 따라 약관을 고쳤다.
골프장이 자체적인 예약 취소 약관을 만들고 이용객에게 고지했다고 해서 모든 조항의 효력이 그대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약관규제법은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나 과도한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시키는 조항의 효력을 제한하고 있다.
위약금이 적정한지는 금액 하나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예약 규모와 이용금액, 취소 시점, 골프장에 실제로 발생한 손해 등을 함께 살핀다. 여러 팀을 한꺼번에 예약한 경우라면 위약금 총액이 상당한 금액에 이를 수도 있다.
이번에 거론된 200만원 역시 예약 규모와 이용금액 등을 함께 봐야 한다. 액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불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실제 손해와 비교해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일률적으로 부과했다면 약관의 효력이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현장에 직접 와야만 취소를 인정한다는 조건은 금액과는 다른 차원의 검토가 필요하다. 기상 악화에도 이용객이 골프장에 도착해야만 취소할 수 있도록 했다면 현장 방문을 요구하는 이유와 이를 따르지 않았을 때 위약금을 부과하는 기준이 합리적인지를 살펴야 한다.
특히 골프장이 경기 가능 여부를 결정하고 이용객은 그 판단에 따르지 않을 경우 위약금을 부담한다면 기상 악화에 따른 부담이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쏠리지 않는지도 따져볼 부분이다.
우천 때 적용할 취소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과 한국소비자협회는 지난해 11월 공정위에 골프장이용 표준약관 개정을 요청하면서 객관적인 우천 취소 기준 마련을 개선 과제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공정위도 올해 골프장이용 표준약관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소비자단체와 관계기관을 상대로 의견을 수렴한 데 이어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다. 강수량이나 기상특보 등을 우천 취소 기준에 어느 정도 반영할지도 논의 대상에 올라 있다.
현행 표준약관은 정당한 이유 없이 당일 예약을 취소한 이용객에게 위약금을 물리도록 하면서 폭우 등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는 환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라운드가 시작되기 전 어느 정도의 기상 상황이면 위약금 없이 취소할 수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있다.
골프장 예약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할 수 있다. 악천후에도 예약 취소를 위해 반드시 현장까지 가야 한다면 일반적인 당일 취소와는 성격이 다르다. 예약 불이행에 따른 손해를 이용객에게 부담시키는 것과 기상 악화 때 현장 방문 자체를 취소 조건으로 정하는 것은 각각의 근거와 기준을 따로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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