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바이오의약품 제조 과정에서 투구게 혈액을 이용해 실시해온 내독소 검사가 동물 유래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을 비롯한 6개 국제 규제기관이 투구게 혈액을 대체할 수 있는 재조합 내독소 검사법에 대한 공동 평가를 마치면서다.
2일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FDA와 EMA는 지난 8월 31일 국제 의약품 규제 당국 연합(ICMRA)을 통해 바이오의약품의 새로운 시험 접근법에 대한 공동 평가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번 평가에서 검토된 방법은 기존 대서양 투구게 아메바세포 용해물(LAL) 검사를 재조합 내독소 검사법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LAL 검사는 투구게 혈액에서 얻은 물질을 활용해 의약품에 포함될 수 있는 내독소를 확인한다. 내독소는 특정 세균에서 유래하는 유해 물질로 환자에게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바이오의약품 제조 과정에서 반드시 관리해야 하는 요소다.
재조합 내독소 검사법인 rFC와 rCR은 투구게 혈액을 직접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의약품의 안전성과 품질을 유지하면서 투구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평가다.
특히 이번 사례는 여러 국가의 규제기관이 하나의 제조 변경 사항을 함께 심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ICMRA 공동 평가 시범사업에 참여한 규제기관들은 제약사가 제출한 자료를 동시에 검토하고 질의를 조율한 뒤 각국의 독립적인 규제 결정을 내렸다.
이번 평가에는 미국 FDA와 EMA 외에도 호주 의약품청(TGA), 캐나다 보건부, 일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 스위스 의약품청(Swissmedic) 등 6개 규제기관이 참여했다. EMA는 시범사업에서 해당 제출 건에 대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평가 대상은 암과 심혈관 질환, 호흡기 질환, 희귀질환 등 다양한 치료 분야의 바이오의약품이었다. 제약사는 시판 후 변경 관리 프로토콜(PACMP) 방식으로 자료를 제출했다. PACMP는 기업과 규제기관이 향후 제조 과정의 특정 변경 사항을 어떻게 관리하고 평가할지 사전에 합의하는 제도다.
이번 PACMP는 지난 6월 승인됐다. 6개 규제기관은 표준 검토 기간인 120일에 따라 동일한 제출 자료를 동시에 심사했다. 국제 규제기관들이 제조 변경 사항을 공동으로 검토하면서 사실상 비슷한 시기에 결론을 낸 첫 사례로 평가된다.
규제기관 간 협력은 제약사에도 장점이 있다. 국가마다 별도로 자료를 제출하고 비슷한 질문에 반복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제기관 역시 과학적 전문지식을 공유하고 심사 과정에서 논의를 조율할 수 있어 중복 업무를 줄이고 새로운 시험법에 대한 검토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투구게 보호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대서양연안수산위원회(ASMFC)에 따르면 2024년 미국 연안에서 바이오의약품 내독소 검사를 목적으로 포획돼 채혈 시설로 옮겨진 대서양 투구게는 약 100만 마리에 달했다.
의약품 검사에 사용되는 투구게는 혈액의 일부를 채취한 뒤 바다로 돌려보내진다. 하지만 채혈과 운송 과정에서 스트레스와 부상을 입으면서 폐사하는 개체도 발생한다. 2024년 바이오의학 용도에 따른 총 추정 폐사 규모는 약 18만4693 마리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글로벌 제약업계에서도 투구게 혈액을 사용하는 검사법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화이자와 로슈, 일라이 릴리, 머크 등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 80여 곳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공급망 파트너 20여 곳이 참여하는 제약공급망이니셔티브(PSCI)도 투구게 보호와 공급망 지속가능성을 위한 감축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PSCI 회원사들은 의약품 제조 과정과 주요 협력사의 공정에서 LAL과 아시아 투구게 혈액을 사용하는 양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기 위한 기업별 목표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멸종위기 우려가 있는 아시아 투구게 혈액 사용을 중단한 기업도 늘고 있다.
불가피하게 LAL 시약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원료가 어떤 환경에서 채취됐는지, 동물복지와 생물다양성 기준을 충족하는지 확인하는 추적·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추세다.
이번 국제 공동평가는 이런 산업계의 변화에 규제기관이 본격적으로 호응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재조합 내독소 검사법이 각국에서 활용될 수 있는 규제 기반이 마련되면 바이오의약품 제조업체의 동물 유래 원료 의존도 역시 점차 낮아질 수 있다.
다만 새로운 시험법이 기존 LAL 검사를 얼마나 폭넓게 대체할 수 있을지는 향후 실제 제조 현장 적용과 추가적인 규제 경험을 통해 확인될 전망이다. 국제 규제기관들이 공동 심사 체계를 확대하고 대체시험법에 대한 검토를 이어갈 경우 바이오의약품 산업의 시험·품질관리 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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