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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쟁 추경' 단 한 푼의 '쪽지 예산'도 용납 못 한다

2026-04-06 12:40:00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지난달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중동 사태 대응을 위한 2026년도 추가경정 예산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오승철 산업통상부 기획조정실장,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임기근 기획예산처 차관,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사진=연합뉴스]

국가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중동발 전쟁은 현지의 인명 피해를 넘어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 경제 전반을 압박하고 있다. 치솟는 유가와 불안정한 공급망, 고물가에 시달리는 서민 경제는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하는 이번 추가경정예산, 이른바 ‘전쟁 추경’은 이러한 위기를 버텨내기 위한 최후의 안전판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회담 합의 소식과 함께 흘러나오는 정치권의 계산은 벌써부터 우려를 낳고 있다.

전쟁 추경은 그 성격부터 엄정해야 한다. 비상 상황에서 편성되는 예산인 만큼 단 한 푼의 재정도 피해 산업 지원과 안보 역량 강화, 그리고 민생 안정에 집중되어야 한다. 이는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수차례의 추경 과정에서 이 기본 원칙이 정쟁과 이해관계에 밀려 훼손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목격해 왔다. 국난 극복을 위해 마련된 재원이 사적 이해에 따라 왜곡된다면 이는 정치의 실패를 넘어선 문제다.

국회 심의 과정에 들어서면 예산은 본래 목적을 잃기 쉽다. 긴급성과 공공성이라는 원칙은 뒤로 밀리고 그 자리를 지역구 이해와 정치적 계산이 채우는 일이 반복돼 왔다. 이른바 ‘쪽지 예산’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구태다. 특정 지역 민원 사업이 은밀히 끼어들고 눈에 띄지 않는 항목에 예산이 숨겨지는 관행도 공공연했다. 국가적 위기를 사익 추구의 기회로 삼는 행태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문제는 여당에만 있지 않다. 야당 역시 이러한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겉으로는 재정 건전성과 민생을 강조하면서도 협상 과정에서는 몫을 챙기는 데 집중해 온 것이 현실이다. 전쟁이라는 엄중한 상황마저 정치적 흥정의 장으로 삼는다면 이는 정치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작은 예외가 큰 균열로 이어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정도는 괜찮다’는 안일한 판단이 쌓이면 재정 기강은 무너지고 정작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대응 능력도 약화된다. 이번 추경에서 단 한 건의 정치적 예외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번 여야정 회담과 이어질 국회 심의는 정치권의 책임성을 가늠하는 시험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무너지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탱하고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부터 서민의 삶을 보호하며 안보 공백을 메우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는 항목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지역 민원이나 정치적 고려는 평시 예산에서 다뤄도 늦지 않다.

국회에 엄중히 요구한다. 이번 추경 심의 과정은 한 점의 의혹도 없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각 예산 항목이 왜 지금 필요한지 국민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면 과감히 제외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국민의 세금을 다루는 기관의 기본 책무다.

전쟁은 외부의 위협과 맞서는 일인 동시에 내부의 무책임을 점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추경마저 정치적 흥정으로 변질된다면 우리는 외부의 위협 이전에 내부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번 예산은 오직 전쟁 대응과 민생 회복, 국가 안위를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위기 속에서 정치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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