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삼성의 상속세 완납 소식을 접하며 만감이 교차한다. 우선 마땅히 환영하고 박수칠 일임에는 분명하다. 막대한 자금이 국가재정으로 유입되어 복지와 의료 인프라의 마중물이 될 것이고 기증된 문화재는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자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법에 정해진 세금을 내는 당연한 행위'가 왜 이토록 특별한 귀감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 특별해 보이는 시대, 우리는 그동안 재벌가의 변칙과 편법에 너무 익숙해져 있
었던 것은 아닌가." 돌이켜보면 우리 현대사에서 재벌의 상속은 늘 논란의 중심이었다. 공익법인을 통한 편법 승여,일감 몰아주기, 복잡한 지배구조를 이용한 세금 회피 등 '세금 없는 대물림'은 재계의 고질적인 악습이었다. 상속세 납부 고지서를 받아 들면 어떻게든 이를 줄여보려 법의 허점을 찾는 것이 마치 경영 능력의 일부인 양 치부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법과 원칙에 따라 12조원이라는 거액을 묵묵히 분납해온 삼성의 행보가 역설적으로 '신선한 충격'이자 '찬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삼성이 보여준 이번 모습은 단순히 '돈을 냈다'는 사실을 넘어선다. 유족들이 상속세 신고 당시"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라고 밝힌 점은 우리 사회의 상식적인 기본 원칙을 재확인한 선언이었다. 12조원이라는 금액은 삼성 일가에게도 결코 가벼운 무게가 아니었을 것이다. 주식 담보대출을 받고 개인 자산을 매각하며 납부 기일을 지킨 것은 기업가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준 대목이다. 이는 과거의 구태의연한 방식과 결별하고 '국민 기업'으로서의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특히 의료 지원과 문화재 기증은 상속세 납부라는 법적 의무를 사회적 기여라는 차원으로 승화 시켰다. 7000억원을 출연해 중앙감염병병원을 건립하고 소아암·희귀질환 환아들에게 3000억원을 기탁한 것은 국가가 미처 다 살피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기업이 보완하는 훌륭한 사례다. 또한 '이건희 컬렉션'의 환원은 문화유산의 사적 소유를 공적 향유로 전환한 일대 사건이다. 이는 창업주 이병철 회장부터 이어져 온 '사업보국(事業報國)'과 '문화보존'의 철학이 이재용 회장 세대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삼성이 잘했다는 칭찬 너머의 과제다. 이번 사례가 삼성이라는 특정 기업의 일회성 미담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다른 기업인들에게도 '상속세 납부는 피할 수 없는 비용이 아니라 기업 성장의 결실을 국가와 나누는 정당한 과정'이라는 인식이 확립되어야 한다. 탈세와 편법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성실 납세를 명예로 여기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당연한 일을 하고도 찬사를 받는 이 아이러니한 현실은, 역설적으로 우리 기업인들이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제 우리 경제는 규모 면에서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이에 걸맞은 기업가 정신과 시민 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할 때다. 삼성의 이번 행위가 기업 상속 문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한다. 다른 대기업들과 자산가들도 이번 사례를 본보기 삼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당당하게 책임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대신 어떻게 하면 투명한 승계 과정을 통해 기업을 지속 가능하게 발전시킬지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경영의 도(道)'다.
결론적으로 삼성가의 상속세 완납은 우리 사회에 '기본과 상식'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당연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가 투명하고 공정한 원칙에 목말라 있었다는 방증이다. 이번 일이 일시적인 화젯거리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기업 문화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앞으로 기업인들은 "당당하게 벌고 정직하게내라. 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삼성 일가의 결단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래에 '당연한 납세'가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 상식적인 사회가 오기를 간절히 고대해 본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 선진국이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일상이 되는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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