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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설] 개헌은 '언제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경제일보 2026-05-03 16:29:41
우원식 국회의장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우원식 국회의장이 주도하는 ‘단계적 개헌안’이 이번 주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1987년 헌법 체제 이후 39년 만에 변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이어져 온 이른바 ‘87년 체제’를 손보겠다는 논의는 시대적 과제로도 충분한 무게를 지닌다.

그러나 지금의 추진 방식은 그 무게에 걸맞은가. 오히려 그 절차와 태도에서 적지 않은 의문을 남긴다.

개헌은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니다. 국가 운영의 근간을 바꾸는 중대한 정치적 결단이자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그 과정은 충분한 시간과 공론, 그리고 여야를 아우르는 정치적 타협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이번 개헌안은 지방선거와의 동시 국민투표라는 일정에 맞추기 위해 촉박하게 밀어 붙여지고 있는 인상이 짙다. 절차적 정당성이 결과의 정당성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방식은 스스로 명분을 약화시키는 셈이다.

특히 우원식 의장 행보는 아쉬움을 더한다. 국회의장 취임 이후 개헌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여야 간 실질적 논의를 이끌어 왔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간의 논의는 형식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정치권의 관심 또한 다른 현안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임기 종료를 앞둔 시점에서 급하게 본회의 상정을 추진하는 모습은 ‘개헌을 실현하려는 의지’라기보다 ‘개헌을 추진한 의장으로 기록되려는 의지’로 비칠 여지를 남긴다.

물론 개헌안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부마민주항쟁과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고 계엄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은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측면이 있다. 부마민주항쟁 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 의 정신을 헌법에 명시하는 일은 역사적 정당성을 갖는다. 문제는 ‘무엇을 담느냐’보다 ‘어떻게 담느냐’다.

국민의힘이 ‘졸속 개헌’을 이유로 반대하거나 표결 불참까지 검토하는 상황에서, 의결 정족수 확보가 어려운 현실 역시 외면할 수 없다. 개헌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사안이다. 특정 진영의 의지만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합의 없이 본회의 표결을 강행하려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정치적 소모전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개헌 논의가 또 한 번 ‘이벤트성 정치’로 소비될 위험이다. 선거와 맞물려 추진되는 개헌은 자칫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개헌이 특정 진영의 동원 전략이나 지지층 결집 카드로 활용되는 순간, 그 본래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그리고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개헌은 ‘언제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설령 이번 본회의에서 개헌안이 무산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라도 국회는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토론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공청회와 전문가 논의, 국민 의견 수렴을 통해 개헌의 방향과 내용을 차근차근 다져나가는 것이 순서다. 국회의장은 그 과정을 조율하고 신뢰를 형성하는 데 역할을 집중해야 한다.

개헌은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정치 행위가 아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국가 설계다. 조급함이 아니라 숙의가, 성과가 아니라 책임이 앞서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보여주기식 속도전이 아니라 제대로 된 논의의 장을 여는 것이 진정한 개헌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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