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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데스크 칼럼] 경자유전 무너진 자리… 법보다 요령이 강했던 농지의 시간

한석진 기자 2026-05-09 11:38:16
이재명 대통령 [사진=유대길 기자]


[경제일보] 대한민국 헌법은 오래전부터 답을 적어 놓고 있었다. 헌법 121조는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규정한다. 경자유전 원칙이다. 땅을 가진 사람이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한 농업 정책 조항이 아니다. 식량 안보와 국토 질서 그리고 부동산 투기를 동시에 통제하기 위한 헌법적 선언에 가깝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농지는 오랫동안 가장 손쉬운 투기의 통로 가운데 하나였다. 도시 외곽 개발 예정지 주변 농지는 차명과 위장 영농으로 거래됐고 농업경영계획서는 사실상 형식 서류로 전락했다. 주말농장 수준의 경작 흔적만 남겨도 농지 취득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까지 돌았다. LH 사태 당시 드러난 공직자들의 농지 투기 역시 같은 뿌리였다.
 

문제는 그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농지 투기는 반복됐지만 처벌과 환수는 늘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법은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농지 제도의 근본적 손질을 주문한 것도 결국 이 문제를 겨냥한 것이다. “농사 짓지 않는 사람은 농지를 갖지 말라는 게 헌법과 농지법의 취지”라는 발언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늦게 나온 원칙 확인에 가깝다.
 

특히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대통령이 현행 처분명령 제도를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는 점이다. 실제 농지를 경작하지 않다가 적발돼도 일정 기간 다시 농사를 지으면 처분 의무가 사라지는 현행 운용은 오래전부터 실효성 논란이 있었다.
 

법률 실무에서도 비슷한 장면은 반복돼 왔다. 행정기관은 적발한다. 당사자는 형식적 경작행위를 한다. 시간이 흐른다. 다시 원상 복귀된다. 결국 법 집행은 보여주기 수준에 머문다.
 

그 사이 법은 조금씩 권위를 잃었다. 법을 지키는 사람보다 법망을 비켜 가는 사람이 더 유리하다는 인식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대통령이 “순박한 사람만 걸린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농촌 현장에서는 직접 농사짓는 농민보다 도시 거주 투자자가 더 많은 자본으로 농지를 사들이는 일이 적지 않았다. 농지 가격은 올라갔고 청년 농업인과 신규 귀농인은 진입조차 어려워졌다. 경작을 위한 땅이 아니라 시세차익을 위한 자산이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하루 이틀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자유전 원칙은 헌법에 있었지만 정작 국가 행정은 오랫동안 이를 느슨하게 다뤄 왔다. 농지 관리 권한은 지방 단위로 흩어져 있었고 현장 조사는 인력 부족 속에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역사회 이해관계까지 얽히면 강한 단속은 더 어려워졌다. 적발되더라도 이행강제금 부담은 크지 않았고 처분명령 역시 실제 강제력은 약했다. 불법 보유로 얻는 시세차익이 훨씬 크다는 계산이 가능했던 셈이다.
 

그 결과 피해는 고스란히 실경작 농민에게 돌아갔다. 청년 농업인은 농지를 구하지 못했고 귀농 희망자는 치솟은 가격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농지는 농사를 위한 기반이 아니라 자산 증식 수단으로 변질됐다.
 

대통령이 위성사진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농지 조사까지 언급한 것도 이런 한계를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장기간 방치된 농지인지 실제 경작이 이뤄지는지는 영상 데이터 분석만으로도 상당 부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의지였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상속 농지나 고령 농민 문제처럼 세밀한 보완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예외 사정이 경자유전 원칙 자체를 흔들 이유는 되기 어렵다. 지금까지는 예외가 원칙을 잠식해 온 측면이 더 강했다.
 

농지는 일반 부동산과 다르다. 대한민국 헌법이 유일하게 소유 원칙을 직접 규정한 재산이다. 그만큼 공공성이 강하다. 따라서 국가의 관리 역시 일반 토지와 같은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벌써 재산권 침해 논란을 거론한다. 그러나 경자유전 원칙은 애초부터 일반 사유재산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대한민국 헌정 질서가 선택한 가치다. 오히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원칙이 지나치게 가볍게 다뤄졌다는 지적이 더 정확할 수 있다.
 

법은 선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집행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농지법 역시 마찬가지다. 위장 영농과 형식적 경작이 반복되는데도 처분명령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법을 규범이 아니라 요령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농지 문제는 결국 땅의 문제가 아니다. 법을 누가 지키고 누가 비켜 가느냐의 문제다. 법을 지킨 사람이 손해 본다는 인식이 퍼지는 순간 공동체의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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