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신한·우리, SEC에 ‘이재명 정부 포용금융, 위험요인으로 추가’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는 최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제출한 2025회계연도 사업보고서에서 생산적·포용금융 정책을 새 위험 요인으로 언급했다. 이들 금융지주는 현지 거래소에 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한 회사들이다. 금융지주들이 해외 사업보고서의 ‘투자 위험 요소’ 항목에 경영상 위험을 폭넓게 나열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생산적·포용금융 관련 문구가 지난해 보고서에는 없다가 올해 새로 추가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KB금융은 정부가 저소득층 또는 금융 취약계층 차주에 대한 은행의 우선 대출을 장려하는 포용금융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런 정책이 고객 채무불이행 위험을 키울 수 있는 사업 관행 조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연체율 상승과 자산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한금융도 유사한 취지로 포용금융 정책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연체율과 건전성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금융의 경우 생산적 금융을 보다 직접적으로 거론했다. 우리금융은 한국 정부가 은행들에 전략적·생산적 산업에 대한 대출과 투자를 확대하고, 기존 가계대출 중심 사업모델에서 벗어나도록 장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정책 추진으로 인해 “원래대로라면 지원하지 않았을 부문”에 금융 지원을 제공해야 할 수도 있고, 향후 5년간 최대 7조원 투자 계획 등으로 의도치 않은 비용이나 손실을 부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순이자마진 압박, 대출 부실 위험 증가, 연체율 상승 가능성도 함께 제시했다.
금융권이 특히 주목하는 대목은 이 같은 내용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공시한 국내용 사업보고서에는 빠져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금융당국의 정책 기조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지만, 미국 투자자에게는 잠재 위험을 알릴 의무가 있다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 눈치를 보느라 국내에서는 말하지 못한 우려가 해외 공시의 의례적 문구 속에 우회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현정부 ‘생산·포용금융’...문제는 속도와 방식
정부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이재명 정부는 금융이 국가 면허와 예금자 보호라는 공적 안전망 위에서 영업하는 만큼 단순한 이익 극대화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금융기관을 향해 “돈 버는 게 능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금융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은행에 대해서도 국가 면허와 예금자 보호를 기반으로 영업하는 조직인 만큼 상당한 공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도 올해 정책 방향으로 생산적 금융, 포용적 금융, 신뢰받는 금융을 전면에 내세웠다. 금융위는 신년사에서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첨단산업에 투자하고, 금융산업의 생산적 금융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또 △정책서민금융 상품 개편 △금융회사 기여 제도화 △민간금융과 정책서민금융 연계 등을 통해 포용금융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속도와 방식이다. 금융권에서는 정부의 정책 목표 자체를 부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저신용자와 취약계층이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고 첨단산업과 혁신기업에 장기 자금을 공급하는 일도 한국 경제의 구조 전환을 위해 필요하다. 은행이 예대마진에 안주해 왔다는 비판 역시 금융권이 외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하지만 정책 목표가 은행의 리스크 평가와 가격 결정 기능을 지나치게 압박할 경우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중저신용자 대출을 단기간에 확대하면 연체율 상승은 불가피하다. 전략산업 투자가 정책 목표에 따라 배분될 경우 민간 금융회사의 수익성·건전성 기준과 충돌할 수 있다. 손실이 발생하면 그 부담은 결국 주주, 예금자, 금융소비자, 나아가 금융시스템 전체로 전이될 수 있는 것이다.
관치금융 논란은 여기서 비롯된다. 정부가 금융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과 금융회사에 특정 대출·투자 방향을 사실상 강제하는 것은 다르다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부의 금융 공공성 강조는 금융의 사회적 환기하는 일이다.
그러나 특정 대출이나 투자 방향 설정은 신용 배분의 정치화로 흐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은행권이 가장 경계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겉으로는 상생과 포용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수익성 악화, 자산건전성 부담, 주주가치 훼손, 책임 소재 불명확이라는 문제가 쌓일 수 있어서다.
실제 금융권의 긴장감은 인터넷은행으로도 번지고 있다. 최근에는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와 신용평가체계 개편, 인터넷은행의 설립 취지 점검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인터넷은행들은 이미 평균 대출잔액의 일정 비율 이상을 중저신용자에게 공급해야 하는 규제를 받고 있는데 향후 목표 비율 상향이나 신용평가모형 외부 검증 강화가 논의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입장에서는 금융권이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상황에서 사회적 책임을 더 져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은행 입장에서는 정책금융 부담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건전성까지 흔들린다면 결국 대출 여력 축소와 금융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가계부채, 자영업자 연체, 중소기업 신용위험이 동시에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정책 압박이 과도해지면 은행의 방어적 영업이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민간 금융에 공공역할만 요구...손실 책임 시장에 맡겨선 안돼"
이에 경제전문가들은 생산적·포용금융의 성패는 ‘정부가 얼마나 세게 밀어붙이느냐’가 아니라 ‘누가 위험을 부담하고 손실이 나면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명확히 하는 데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경제학회장인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 목적의 대출과 투자가 필요하다면 정부 보증, 정책금융기관의 위험 분담, 세제 지원, 자본규제 조정 등 정교한 장치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며 “민간 금융회사에 공공 역할만 요구하고 손실 책임은 시장에 맡기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금융은 공공성과 수익성이 충돌하는 산업이다. 은행은 사기업이지만 동시에 금융시스템의 일부다. 그래서 정부의 감독은 필수다. 그러나 감독이 지시가 되고, 지시가 대출과 투자 배분의 기준이 되면 금융의 가격 기능은 약해진다. 금융회사가 위험을 정확히 평가하지 못하면 자본은 필요한 곳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요구되는 곳으로 흐를 수밖에 없어서다.
금융권에선 이번 해외 공시 논란은 금융지주들이 정부 정책에 공개 반기를 들었다기 보단 정책금융 확대에 따른 잠재 비용을 투자자에게 알린 사건에 가깝다는 평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분명한 신호가 담겨 있다. 금융권은 정부의 생산적·포용금융 기조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그 부담이 건전성 악화와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정부가 금융을 동원하고 싶다면 그에 맞는 책임 구조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은행도 공공성을 외면해서는 안 되지만 정부 역시 시장의 위험 평가 기능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며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이 성공하려면 관치의 속도전이 아니라 시장과 정부의 위험 분담 원칙부터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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