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사회

[데스크 칼럼] 교육교부금 수술대 올랐지만, 칼보다 설계도가 먼저다

한석진 기자 2026-06-01 08:54:43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한 초등학생과 부모님이 교내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중동의 포성이 대한민국 교실 예산에 불꽃을 튀겼다. 정부가 중동 분쟁 대응을 명분으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1972년 도입 이후 54년 동안 근본적 손질을 받지 못했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구조 개편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기획예산처는 내국세의 20.79%를 시도교육청에 자동 배분하는 현행 구조를 경상성장률 연동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반세기 가까이 손대지 않았던 제도가 처음으로 수술대에 오른 셈이다.
 

숫자를 보면 개편 논의가 왜 불거질 수밖에 없었는지 읽힌다. 2015년 39조원이던 교육교부금은 올해 76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같은 기간 학생 수는 638만 명에서 502만 명으로 22% 줄었다. 반도체 호황으로 법인세 수입이 급증하면서 내년에는 교부금이 20조원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예산은 쌓이는데 일부 시도교육청에서는 집행하지 못한 이월·불용액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감은 즉각 반발했다. "교육계와의 협의 없는 일방적 개편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협의회의 입장이다. 경상성장률 연동으로 전환하면 연간 최대 20조원의 재정 손실이 발생한다는 학계 분석을 내세웠고, 지난 4년간 시도교육청 기금이 83% 급감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교직원 인건비·학교 운영비·시설 관리비는 학생 수가 아니라 학교 수와 학급 수에 따라 결정되는 고정비용이라는 반박도 나왔다.

 

이 주장 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교육 예산의 55%는 교직원 인건비이고, 나머지도 무상급식비·시설 유지비 등 경직성 경비로 채워져 있어 시도교육청이 실제로 자율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은 전체의 10% 안팎에 불과하다. 총액을 일률적으로 깎는 방식의 개편이라면 그나마 남은 교육 투자 여력마저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소통 없는 개편"이라는 비판 역시 단순한 반발로만 볼 수 없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법률로 정해진 제도인 만큼, 그 골격을 바꾸려면 법 개정 절차를 밟아야 하고 직접적 이해관계를 지닌 시도교육청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입법 과정의 기본에 속한다. 이익 수호를 위한 수사(修辭)이기도 하지만, 절차적으로 따지면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절차의 정당성을 요구하는 것과 구조 자체의 변경을 막으려는 것은 전혀 다른 주장이다. 교육감협의회의 반대 논리를 들여다보면 "지금 당장 줄이면 안 된다"는 시기 문제에 집중돼 있을 뿐, 내국세 자동 연동이라는 구조 자체의 타당성은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1972년에 제정된 법이 54년 뒤의 인구 구조와 재정 현실에도 그대로 맞아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KDI는 경상 GDP에 연동하면서 학령인구 변화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개편하면 40년간 약 1000조원의 재정을 아끼면서도 1인당 교육투자 수준은 선진국보다 높게 유지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진짜 쟁점은 개편 찬반이 아니라 어떻게 개편하느냐에 있다. 미국·영국·일본은 매년 교육 수요를 재산정해 예산을 배분한다. 경상성장률이나 학생 수에 기계적으로 연동하는 방식은 경기 침체기에 교부금을 급감시키고 농어촌 소규모 학교에 직격탄을 날린다. 교부금의 활용 범위를 대학 지원이나 평생교육으로 넓히는 방안, 지역 여건과 교육 수요를 반영한 차등 배분 설계도 논의 테이블에 올라야 한다. 개혁의 방향이 옳더라도 설계가 빈약하면 법원이 아니라 현장에서 먼저 무너진다.
 

재정당국 단독이 아니라 교육 현장·지방정부·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입법 논의 구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적이 옳다고 해서 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다. 수술대에 오른 것은 맞다. 그러나 집도의라면 칼보다 수술 계획서를 먼저 내놓아야 한다.


0개의 댓글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