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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반도체 착시와 차이나 덤핑 뒤에 가려진 '민생 한파' 직시해야

경제일보 2026-09-02 10:52:56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한국 경제가 기이한 역설의 한복판에 서 있다.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무역수지가 흑자를 이어가면서 겉으로는 경제가 순항하는 듯하다. 하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의 온도는 싸늘하기만 하다.

통계청의 7월 산업활동동향은 이런 괴리를 여실히 보여준다. 생산과 수출의 일부 지표가 버티는 동안 소비는 위축되고 내수의 활력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반도체라는 ‘슈퍼스타’가 한국 경제 전체의 성적표를 대신하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 같은 착시가 정책 판단까지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반도체 수출이 아무리 늘어도 그 과실이 골목 상권과 중소기업, 서민 가계로 흘러들지 않는다면 국민에게 경제성장은 숫자에 불과하다. 매출 감소와 임대료·인건비 부담에 폐업을 고민하는 자영업자와 고물가에 장바구니를 줄이는 가계의 현실을 외면한 채 수출과 무역흑자만 강조하는 것은 경제정책의 본말을 뒤집는 일이다.

대외 여건도 심상치 않다. 중국 경제의 부동산 침체와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중국 기업들이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저가 제품을 해외시장에 밀어내는 이른바 ‘불황 수출’이 거세지고 있다. 철강과 석유화학은 물론 배터리와 소재·부품·장비 등 우리 제조업의 허리를 떠받쳐온 산업이 직접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가격 경쟁에서 밀린 중소·중견기업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것이 단순한 경기순환상의 어려움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가격을 낮춰 시장을 잠식하고 한국 기업의 생산 기반이 무너지면 경기가 회복된 뒤에도 되살리기 어려운 산업 공동화로 이어질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공급망 경쟁이 격화되는 세계 경제에서 손을 놓고 시장의 자율적 조정만 기다리는 것은 산업 기반을 스스로 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부는 이제 경제정책의 시선을 바꿔야 한다. 중국의 불공정한 저가 공세에 대해서는 통상 규범에 근거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덤핑 등 불공정 무역행위가 확인되면 반덤핑 관세 등 필요한 무역구제 조치를 신속하게 가동해야 한다. 동시에 국내 기업이 단순한 가격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연구개발과 설비 고도화, 생산성 향상을 지원해야 한다. 산업을 보호하는 것과 경쟁력을 키우는 구조개혁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내수 회복 역시 더 이상 뒷전으로 밀어서는 안 된다. 금리와 물가 부담에 짓눌린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회복시키고 소상공인의 부채 부담을 완화하며,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는 중소기업에는 적시에 자금이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다만 일회성 현금 지원이나 단기 부양책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소비가 살아나려면 가계의 소득과 고용이 안정되고 기업의 투자 여력이 회복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의 진정한 체력은 수출 대기업 몇 곳의 실적만으로 측정할 수 없다. 골목 상점의 불이 켜지고 중소 제조업체의 기계가 힘차게 돌아가며 서민의 지갑이 열릴 때 비로소 경제가 살아났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바라봐야 할 곳은 화려한 수출 통계의 꼭대기가 아니라 그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민생의 바닥이다. 반도체 호황을 한국 경제 전체의 호황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론이 아니라 냉정한 진단이고, 구호가 아니라 실행이다. 수출의 온기가 내수와 제조업 현장으로 번지도록 경제정책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것, 그것이 지금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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