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대법관 한 자리를 두고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맞섰다. 이제는 누가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느냐를 넘어 청와대가 보낸 공문의 뜻까지 서로 다르게 읽고 있다. 나라의 최고 기관들이 대법관 한 명을 뽑는 문제로 공문 해석까지 다투는 상황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헌법은 대법원장에게 후보자를 추천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임명할 권한을 줬다. 하지만 두 권한이 부딪친 뒤 어떤 순서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는 법에 제대로 담겨 있지 않다.
발단은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 문제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8월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손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법률 용어로는 이를 ‘제청’이라고 한다. 청와대는 열흘 뒤 손 후보자의 임명 절차를 국회로 넘기지 않고 다른 후보자를 다시 추천해 달라고 요구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8일에는 청와대 공문에 대해 “‘재제청하라’고만 왔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을 뽑는 순서를 정하고 있다.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추천하고 국회가 동의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추천은 대법원장, 동의는 국회, 임명은 대통령 몫이다. 어느 한 기관이 마음대로 대법관을 정하지 못하게 권한을 나눠놓은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이 추천된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부터 생긴다. 이미 올라간 후보자의 지위가 어떻게 되는지, 대법원장이 다시 후보자를 추천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두 기관의 입장이 끝내 좁혀지지 않을 경우 누가 먼저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헌법은 대법관 임명의 큰 틀만 정했고 법원조직법도 후보 추천 절차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작 제청 이후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판단이 엇갈릴 경우를 다룬 규정은 비어 있다.
대법관 인사를 맡은 기관들조차 공문 한 장의 뜻부터 따져야 하는 상황이다. 공문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기존 후보자를 그대로 둘지, 다른 후보자를 다시 추천할지도 달라진다. 나라의 최고 법원을 구성하는 대법관 인사가 공문 해석에 따라 갈릴 수 있다면 제도부터 손봐야 한다.
대법관은 대법원에서 중요한 재판을 맡는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에서는 대법관들이 함께 모여 최종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만큼 누가 대법관이 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절차를 거쳐 임명되느냐도 중요하다. 절차가 흐릿하면 대법관 한 명의 인사 문제가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권한 충돌로 번진다.
누구 권한이 더 센지를 따질 일은 아니다. 대통령에게 임명권이 있는 것도 헌법에 적혀 있고 대법원장에게 후보 추천권이 있는 것도 헌법에 적혀 있다. 한쪽 권한을 줄여 다른 쪽에 힘을 실어줄 일이 아니다. 두 권한이 부딪쳤을 때 어떤 순서로 풀어나갈지만 정하면 된다.
대통령이 추천된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의 절차부터 정비해야 한다. 기존 후보자의 지위가 언제까지 유지되는지, 다른 후보자를 다시 추천하려면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 대법관 자리가 장기간 비지 않도록 처리 시한을 둘 것인지도 함께 정리해야 한다. 지금처럼 각 기관이 같은 상황을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공문 한 장을 놓고 서로 다른 뜻이라고 하고 국회가 다시 그 뜻을 따지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이번 논란이 끝난 뒤 남겨야 할 것은 누가 이겼느냐가 아니다. 다음번에는 같은 문제가 생겨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헌법이 권한을 나눠줬다면 두 권한이 부딪쳤을 때 어떻게 풀지도 법으로 정해두는 것이 맞다.
Copyright © 경제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기홍 JB금융 회장, ROE 13% 질적 성장…캐피탈·동남아로 사업 확대 [2026 금융리더십]](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6/09/28/20260928001659790568_388_136.jpg)

![통신 다음은 AIDC…LG유플러스, 파주 200MW에 미래 건다 [LGU+, AI 팩토리를 짓다①]](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6/09/28/20260928095731979560_388_13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