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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 왜 내 지갑은 가벼운가

송정훈 기자 2026-10-28 15:30:00

반도체 호황에 성장률 반등했지만 민간소비는 감소…국민소득과 체감소득의 간극 좁혀야

[사진=AI 생성 이미지]

[경제일보] 한국 경제가 오랜만에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설비투자도 살아났다.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진입에 대한 기대까지 나온다. 그런데 국민의 일상으로 눈을 돌리면 분위기가 다르다. 장바구니 물가와 주거비, 대출이자 부담은 여전하다. 월급이 올라도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제성장률과 국민의 살림살이 사이에 간극이 벌어져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27일 발표한 올해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보다 1.0%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3.4% 성장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2.3% 늘었고 설비투자도 4.1% 증가했다. 지난해 연간 성장률이 1.0%에 그쳤던 점을 고려하면 뚜렷한 반등이다.
 
그러나 같은 통계에서 민간소비는 전 분기보다 0.2% 감소했다. 정부소비가 1.9%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자동차 출고 지연과 금융서비스 소비 감소 등 일시적 요인도 작용했지만 생산과 투자의 회복이 가계 소비로 충분히 확산되지 않았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국민소득 통계에도 비슷한 간극이 존재한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6855달러였다. 올해는 반도체 호황 등에 힘입어 4만달러 진입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러나 4만달러는 아직 확정된 성과가 아니다. 환율에 따라 달러 기준 국민소득이 달라진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1인당 GNI가 국민 한 사람이 실제로 받는 연봉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업과 정부, 가계 등 국민경제 전체의 소득을 인구로 나눈 수치다. 기업이익이 급증하면 국민소득은 높아질 수 있지만 그 증가분이 곧바로 근로자의 월급이나 자영업자의 수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올해 명목 국민총소득이 6.1% 증가하는 반면 가계총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은 4.6%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서로 성격이 다른 지표인 만큼 단순 비교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기업 중심의 성장 회복이 가계의 소득 개선으로 얼마나 전달되는지 살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남는다.
 
실제 가계소득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29만5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 증가했다. 물가를 반영한 실질소득도 1.5% 늘었다. 다만 근로소득 증가율은 0.8%에 그쳤고 이전소득은 20.4% 증가했다. 가계소득이 개선됐다는 사실과 일해서 벌어들이는 소득의 증가 속도가 더뎠다는 사실을 함께 봐야 한다.
 
체감경기가 쉽게 살아나지 않는 데는 생활비 부담도 작용한다. 물가상승률이 낮아졌다고 이미 오른 가격까지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식료품과 외식비, 주거비처럼 매달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높은 수준에 머물면 소득 증가분을 체감하기 어렵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과 전월세 비용, 자녀 교육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가계라면 사정은 더욱 팍팍하다.
 
평균 국민소득이 설명하지 못하는 차이도 있다. 반도체 대기업이 높은 이익을 거두는 동안 내수에 의존하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다른 경기를 경험할 수 있다. 자산을 보유한 가구와 그렇지 못한 가구의 형편도 다르다. 평균이 높아졌다고 모든 계층의 생활 수준이 같은 폭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기업의 성과를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수출기업의 경쟁력은 한국 경제의 중요한 자산이다. 기업이익이 늘어야 새로운 투자와 고용, 임금 상승의 여력도 생긴다. 다만 그 성과가 국내 경제 곳곳으로 퍼지는 통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반도체 호황이 소재·부품·장비업체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기업의 투자 확대가 양질의 일자리와 생산성 개선으로 연결돼야 한다. 서비스업과 지역경제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 특정 산업의 호황만으로 국민 다수의 생활 수준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리기는 어렵다.
 
정부가 경제의 성적표를 읽는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한다. GDP 성장률과 1인당 GNI는 중요한 지표지만 그것만으로 국민의 형편을 설명할 수는 없다. 중위소득 가구의 실질 처분가능소득과 주거비 부담, 가계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 계층별 소비 여력을 함께 살펴야 한다. 국민이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늘었는지가 체감경기를 가르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4만달러는 한국 경제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이정표다. 그 성취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국가가 얼마나 벌었는지와 국민이 얼마나 여유롭게 사는지는 같은 질문이 아니다. 전자는 수출과 기업이익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후자는 임금과 생활비, 부채와 주거 문제까지 들여다봐야 답이 나온다.
 
국민소득 4만달러의 가치는 숫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가 경제의 성장만큼 국민의 지갑에도 여유가 생길 때, 비로소 그 숫자가 삶의 성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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