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왕과 사는 남자' 1000만 관객 돌파…2년 침묵 깬 韓 영화의 부활

부로요 기자 2026-03-08 10:40:31
장항준의 24년 뚝심  유해진의 흥행 공식 스크린 구원투수 되다
지난 6일 서울 한 영화관에서 시민이 '왕과 사는 남자' 영화 홍보물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한국 영화계에 2년 만에 '1000만 영화'가 탄생했다. 침체일로를 걷던 극장가에 단비 같은 소식이자 블록버스터 위주의 흥행 공식을 깨고 '서사'의 힘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8일 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는 개봉 31일째인 지난 6일 오후 6시30분 기준 누적 관객 수 1000만명을 돌파했다.

역대 국내 개봉작 중 34번째, 한국 영화로는 25번째 1000만 클럽 가입이다. 한국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2024년 이후 2년 만의 쾌거다. 팬데믹 이후 높아진 티켓 가격과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강세로 극장을 떠났던 관객들을 다시 불러모으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왕사남'의 흥행은 최근 한국 영화의 부진을 씻어낼 해법을 제시했다. 수백억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은 대작들이 잇따라 고배를 마시는 동안 이 영화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영화는 비운의 왕 단종(박지훈 분)과 그를 감시해야 하는 촌장 엄흥도(유해진 분)의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그린다. 역사적 사실(Fact)에 영화적 상상력(Fiction)을 더한 팩션 사극으로 자극적인 소재 대신 세대를 관통하는 따뜻한 위로와 유머를 담아냈다. 이는 설 연휴 가족 단위 관객과 2030 세대 모두를 사로잡는 원동력이 됐다.

특히 유해진의 생활 연기와 첫 상업영화 데뷔작에서 안정적인 사극 톤을 소화한 박지훈의 '케미'가 입소문을 탔다. 악역으로 분한 유지태와 감초 역할을 한 전미도의 호연도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 장항준의 '인생 역전', 유해진의 '흥행 보증'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사진=쇼박스]

이번 1000만 돌파는 감독과 배우 개인에게도 남다른 기록을 남겼다. 2002년 '라이터를 켜라'로 데뷔한 장항준 감독은 24년 만에 첫 1000만 감독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예능에서 보여준 입담꾼 이미지를 넘어 연출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유해진은 '왕의 남자', '베테랑', '택시운전사', '파묘'에 이어 개인 통산 다섯 번째 1000만 영화를 기록하며 충무로 최고의 흥행 보증수표임을 재입증했다. 아이돌 출신 박지훈은 첫 스크린 주연작으로 1000만 배우 대열에 합류하며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영화계는 '왕사남'의 성공이 한국 영화 투자 생태계에 긍정적인 신호를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한국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어려워지면서 신규 투자가 급감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이번 흥행은 잘 만든 콘텐츠는 여전히 극장에서 통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가 한목소리로 K-콘텐츠 지원 사격을 약속한 만큼 세제 혜택이나 펀드 조성 등 정책적 지원 논의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낙관은 이르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나 홀드백(극장 상영 후 VOD 출시까지의 기간) 법제화 등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왕사남'이 쏘아 올린 희망의 신호탄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한국 영화의 진정한 르네상스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