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이란 시위 현장에서 자주 들리는 구호가 있다. “마르그 바르 아므리카(Marg bar Amrika)” 즉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말이다. 서방에서는 이를 종교적 극단주의의 표현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란 내부에서는 이 구호의 출발점을 70여 년 전 한 정치 사건에서 찾는 시각이 많다. 1953년 미국과 영국이 개입한 쿠데타다.
1950년대 초 이란에는 모하마드 모사데크라는 정치인이 있었다. 모사데크는 1951년 총리에 오른 민족주의 지도자로, 당시 이란 국민에게 큰 지지를 받았다. 모사데크의 대표 정책은 석유 국유화였다. 당시 이란 석유 산업은 영국 기업 앵글로-이란 석유회사(AIOC)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훗날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이 된 BP(British Petroleum)의 전신이다. BP는 현재 영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석유 회사 가운데 하나로, 세계 주요 산유국에서 석유 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
모사데크 정부는 이 석유 산업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란 의회도 이를 승인했다. 그러나 영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과 협력해 모사데크 정부를 제거하는 비밀 작전을 추진했다.
1953년 8월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정보기관 MI6는 ‘아약스 작전(Operation Ajax)’이라는 쿠데타를 실행했다. 거리 시위 조직, 정치인 매수, 군부 동원 등이 동원됐다. 결국 모사데크 정부는 붕괴됐고 팔라비 왕이 권력을 되찾았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2013년 기밀 문서를 공개하며 CIA가 쿠데타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쿠데타 이후 이란에서는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이 권력을 강화했다. 팔라비 왕조는 서구식 산업화 정책을 추진했고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동시에 정치적 통제도 강했다. 비밀경찰 사바크(SAVAK)는 반체제 인사를 감시하고 체포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냉전 시기 미국은 이란을 소련을 견제하는 전략 거점으로 보고 강하게 지원했다. 이 때문에 일부 이란인들은 이 시기를 외세가 국내 정치에 깊이 개입한 시기로 기억한다.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는 지금도 이란의 정치 집회나 금요 기도에서 등장한다. 다만 최근 이란 사회에서는 다른 구호도 나타나고 있다. 2025년 이후 이어진 반정부 시위에서는 “독재자에게 죽음을”, “하메네이에게 수치를” 같은 구호가 등장했다.
일부 중동 전문가들은 이를 이란 사회 내부의 변화 신호로 해석한다. 반미 구호가 여전히 정치적 상징으로 남아 있지만, 이란 사회의 인식은 단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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