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한미약품그룹이 그동안 유지해온 ‘가족 경영’과 ‘내부 승진’의 인사 기조에서 벗어나 외부 전문가를 수장으로 맞이했다.
31일 한미약품은 서울 송파구 한미타워에서 개최된 제16기 정기주주총회에서 황상연 HB인베스트먼트 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를 사내이사로 선임하고 이어 열린 이사회에서 신임 대표이사로 선출했다.
황 신임 대표는 서울대학교 화학과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친 전형적인 ‘화학·바이오 전문가’이자 금융권을 두루 거친 ‘전략가’로 통한다. 종근당홀딩스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제약업계 생리를 파악했고 브레인자산운용 대표와 HB인베스트먼트 PE부문 대표를 거치며 자본시장에서의 기업 가치 제고 역량을 인정받았다. 한미약품이 순수 내부 출신이 아닌 외부 인사를 대표로 앉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날 주총의 주인공은 황 대표보다 ‘떠나는 이’와 ‘남은 이’들의 갈등이었다. 당초 재선임이 점쳐졌던 박재현 전 대표는 지난 12일 돌연 사의를 표명하며 이사회에서 물러났다. 박 전 대표는 송영숙 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그룹 내 실질적 개인 최대 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의 갈등설이 불거지며 결국 중도 하차했다.
이번 주주총회에서는 경영진 교체와 함께 주요 주주 간 지분 구조 변화에도 관심이 모였다. 이번 주총을 기점으로 송영숙 회장, 임주현 부회장, 신동국 회장, 그리고 라데팡스파트너스가 맺어온 ‘4자 연합’에 균열의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신 회장은 최근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추가 매수하며 지분율을 29.83%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송 회장 측 지분율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치로 사실상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체급을 갖췄음을 의미한다.
업계에서는 송 회장이 박 전 대표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사가 강행된 점을 미뤄 볼 때 신 회장이 더 이상 모녀 측의 조력자 역할에 머물지 않고 경영 전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주총에서 라데팡스의 김남규 대표가 이사회에 진입한 것을 두고 신 회장이 라데팡스의 경영 개입을 견제하기 위해 지분 확대라는 승부수를 던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미약품그룹은 이미 2024년부터 임종윤·임종훈 형제 측과 송영숙·임주현 모녀 측이 그룹 지배권을 놓고 극한의 대립을 이어온 바 있다. 당시 신 회장이 모녀 측의 손을 들어주며 분쟁이 종식되는 듯했으나 이번 주총 결과로 인해 갈등의 불씨는 오히려 더 커진 형국이다. 형제 측은 사모펀드인 라데팡스가 이사회에 진입한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 황상연 대표 앞에는 산적한 과제가 놓여 있다. 당장 갈등으로 분열된 내부 조직을 추스르는 것이 급선무다. 외부 출신으로서 오너 일가와 대주주들 사이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만큼 그의 경영 능력보다는 ‘정치적 중재력’이 먼저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한미약품의 본질인 R&D 역량을 유지하는 것도 과제다. 현재 추진 중인 비만 치료제 등 핵심 파이프라인의 성과가 경영권 분쟁의 여파로 주춤할 경우 주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황 대표는 종근당에서 전문경영인으로서의 경험을 쌓아온 만큼 향후 경영 역할이 주목된다”며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균형있는 의사결정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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